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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의 '숨겨진 복병', 너래바위의 재앙...극한호우가 드러낸 지질학적 취약성

  • 정연수 기자
  • 입력 2025.08.08 14:11
  • 조회수 6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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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평군, 5년전 산유리 산사태 유족에 5억 배상, '2025 재해 과연 100% 천재지변인가?'

마일리 자동차.jpg

▲가평군 조종면 마일리 계곡 상류, 폭우에 떠내려온 자동차가 형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다. 주택은 급류에 흔적도 없이 유실되었고(사진 중앙),맨 윗집은 1층까지 물에 잠겼다.[사진/정연수 기자.무단 복재및 재배포.DB절대금지] 


2025년 7월 20일, 가평군에 쏟아진 '극한호우'는 5년 전의 악몽을 다시 불러왔다.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집중호우 중 하나로 기록될 이번 폭우는 가평군 전역에 동시다발적인 산사태를 일으켜 천문학적 피해를 불러왔다.

 

특히 휴가철 초입, 산과 계곡 주변에 밀집한 펜션과 캠핑장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피해를 키웠다.

 

이 비극적인 재난 현장에서는 놀랍도록 익숙한 재앙의 단서가 발견되었다. 바로 2020년 8월3일 산유리 산사태의 원인이었던 '너래바위'였다.


폭우가 휩쓸고 간 산사태 현장 30여 곳에서 "마치 기름을 발라놓은 듯 매끄러운" 바위들이 속살을 드러낸 것이다.

서강대연수원 입구.jpg

이는 가평의 산사태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패턴을 가진 지질학적 재앙이었음을 시사한다.

 

▣너래바위와 파이핑 현상,산을 무너뜨리는 치명적 조합

 

'너래바위'는 지표 아래 숨겨진 넓고 평평한 암반을 가리키는 현지 용어다. 2020년 산유리 산사태 당시, 이 바위 위에 얇게 쌓인 토양층과 바위 사이에 빗물이 스며들어 '파이핑 현상'이 발생했고, 결국 토사 전체가 미끄럼틀을 타듯 쏟아져 내리면서 일가족 3명이 희생됐다.

산사태원형.JPG▲2020.8.3일 일가족 3명이 희생한 가평 산유리 산사태 현장[사진/정연수 기자.재배포 및 무단복재.DB 금지] 

 

1심 재판부는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가평군의 책임을 인정해 유가족에게 5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율길리산사태.jpg

5년 뒤, 2025년의 참사 현장에서도 이 '너래바위'는 어김없이 재출현했다. 조종면 마일리, 상면 율길리 등 주요 산사태 발생 지역에서 확인된 너래바위들은 가평의 기반암(주로 편마암)이 풍화되면서 얕고 매끄러운 불투수성 암반을 형성하기 쉽다는 지질학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극한호우가 쏟아질 때, 이 바위는 물을 머금은 토사의 마찰력을 급격히 떨어뜨려 대규모 산사태의 핵심 원인이 되는 것이다.

 

▣ 잣나무 숲의 역설과 난개발의 그늘

 

가평 산사태의 또 다른 원인은 지역 특산품인 '잣나무'였다. 산사태 현장에서 유독 많이 발견된 뿌리째 뽑힌 잣나무들은 얕은 뿌리(천근성) 때문에 토양 결속력이 약하다는 점이 지목되었다.

계곡막은 잣나무.jpg

▲마일리 계곡, 산사태로 뿌리채 뽑힌 잣나무들이 계곡을 막아 피해를 키웠다. [사진/정연수 기자.무단복재및 재배포금지] 

 

집중호우로 지반이 약해지면 나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연쇄적인 '도미노 현상'을 유발해 산사태 규모를 키운다.

 

잣 생산을 위해 대규모로 조성된 단일 수종림이 재해에 취약한 '미운 오리 새끼'가 된 셈이다. 


2020년 산유리 산사태 당시 과수원 조성을 위한 산림 훼손이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되었듯, 

마일리일래분건설.jpg

▲중견건설사 일래븐 건설이 계획중인 가평 조종면 마일리 총 45홀 규모의 골프장 부지.산사태가 발생해 마치 스노우스키장을 방불케하는 계곡 10곳이 형성되었다.[드론/정연수 기자.무단복재및 재배포 절대금지]

 

2025년에도 조종면 마일리에 45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을 위해 임도를 개설하고 벌목등으로 마치 스노우 스키장 슬로프를 연상케 하는 황톳빛 계곡이 10여개가 형성되었다. 

 

“잣나무 뿌리가 급류에 휩쓸려 주택을 덮치고 하천을 막아 재앙을 키웠다”는 마을 주민의 탄식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는 단기적인 개발 이익이 장기적인 재난 위험을 키우는 중대한 정책적 실책이었음을 보여준다.

마일리계곡자동차2.jpg▲급류에 쓸려온 자동차가 형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다.[마일리 계곡. 사진 정연수 기자] 

 

▣ 산사태 위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

 

이번 가평 산사태는 현재의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 시스템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을 명확히 드러냈다.

 

2025년 발생한 총 400여 건의 산사태가 발생한 곳 대부분이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육안 조사나 단순 지형 분석만으로는 '너래바위'와 같이 지하에 숨겨진 위험 요소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극한호우의 빈도가 높아진 만큼, 취약지역 평가 기준에 '강우 강도' 등 새로운 기후변화 요인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5년마다 수립되는 산림 관리 계획과 매년 이뤄지는 기초 조사가 급변하는 기후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평의 반복되는 비극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극한호우, 너래바위, 취약한 잣나무 숲, 그리고 미흡한 정책이 결합된 '완벽한 폭풍'이 낳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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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 계곡 주택, 계곡이 범람하면서 4-5미터 높이의 토사가 주택을 덮쳤다.[사진/정연수 기자.무단복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재앙은 기후변화 시대에 우리가 마주할 재난의 단면을 보여주며, 이제는 눈에 보이는 위험뿐만 아니라 땅속에 숨겨진 '복병'까지도 과학적으로 규명해야 할 때임을 경고한다.

 

이를 위한 근본적인 정책적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정밀 지질 매핑 강화가 시급하다.지표투과레이더(GPR) 등 첨단 탐사 기술을 도입해 지하 암반의 특성을 파악하고, '산사태 위험 지도'를 고도화해야 한다.

 

둘째,기후변화 적응형 산림 관리이다.잣나무 단일 수종림 대신 뿌리가 깊은 활엽수를 섞어 심는 '혼효림'으로 숲의 재해 저항력을 높여야 한다.

 

셋째,동적 위험 평가 및 조기 경보다. 극한호우에 대응해 취약지역 지정 기준을 보완하고, '예비경보'와 같은 다단계 예측 시스템을 더욱 고도화해야 한다.

 

넷째,통합적 토지 이용 계획이다.'너래바위' 등 위험 요인이 확인된 지역에서의 무분별한 개발 행위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가평의 비극은 재난을 막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뼈아픈 교훈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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