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평 상면 율길리,울창했던 잣나무 숲이 산사태가 나면서 200여미터 길이의 계곡이 생겻다. 이 일대에는 20여 곳이 같은 원인으로 산사태가 발생했다.[사진/정연수 기자]
‘7. 20 폭우 사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경기도 가평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 현장에는 뿌리째 뽑힌 잣나무들이 유독 많이 발견되었다.
한때 지역 경제의 '효자 품목'이었던 잣나무 숲이 이제는 재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이번 사태는 기후변화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산림 정책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⓵잣나무 숲의 역설,얕은 뿌리가 부른 비극
잣은 가공 및 수출 산업의 기반이 되는 고부가가치 특용작물이다. 가평군은 국내 잣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생산지였지만, 잣 생산량은 2010년 3,900여 톤에서 2023년 24톤으로 99.3% 급감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병해충 확산이 주된 원인이다. 
▲산사태가 나면서 급류에 떠내려온 잣나무 뿌리 더미.[율길리/정연수 기자]
문제는 잣나무의 뿌리 구조에 있다. 잣나무는 활엽수와 달리 뿌리가 옆으로 얕게 퍼지는 특성이 있어, 토양을 깊게 붙잡아주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산림 전문가들은 잣나무의 얕은 뿌리가 집중호우로 지반이 약해졌을 때 나무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쉽게 뽑히며, 한 그루가 쓰러지면 주변 나무들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을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잣나무 숲이 산사태(사진 왼쪽)가 나면서 포도 밭과 주택을 삼켰다.[율길리/정연수 기자]
⓶경제적 가치 상실과 산사태의 이중고
가평군 전체 산림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잣나무 숲은 이처럼 경제적 가치를 잃은 상황에서 산사태의 위험까지 키우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버렸다.
현재 유통되는 '가평 잣'의 80%가 강원 지역에서 생산된 것일 정도로 잣 생산 기반은 무너졌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복구 사업 이상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거 경제적 효율성만을 좇아 조성된 단일 수종림이 과연 기후변화 시대에도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사진 왼쪽은 잣나무 숲이고,우측은 참나무 등 혼효림이다. 산사태는 잣나무 숲에서 발생(사진 중앙부분)했다. 잣나무가 폭우에 취약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사진/율길리 정연수 기자]
⓷기후변화에 맞는 미래 숲 조성 필요성 대두
전문가들은 산사태 저항력을 높이고 생태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혼효림(다양한 수종이 섞인 숲)조성을 제안한다.

▲율길리 캠핑장, 하천변 지층이 급류에 상당부분 쓸려 갔으나 산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캠핑장은 혼효림 턱 밑에 캠핑 시설을 설치했으나 산사태 피해는 없었다.[사진/율길리 정연수 기자]
뿌리가 깊은 활엽수와 다른 침엽수종을 함께 심어 토양 결속력을 높이고, 다양한 임산물을 생산하여 경제적 가치도 확보하자는 것이다.
가평 산사태는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과 안전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다.
이제는 잣나무 숲에 대한 장기적이고 과감한 정책적 전환을 통해, 기후변화에 강하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미래의 숲'을 조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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