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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경자유전’ 칼바람에 얼어붙은 농촌 부동산…가평 개발경제가 멈췄다

  • 정연수 기자
  • 입력 2026.08.26 10:49
  • 조회수 7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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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발행위 신청 평소의 5분의 1 수준…인허가·건축·토목설계업계 “사실상 개점휴업”
-설악면 외지인 소유 농지 ‘반값 매물’까지 등장했지만 거래 절벽 

-중장비·주유소·철물점·식당으로 불황 확산…경기북부 농촌경제 ‘도미노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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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가평군 설악면의 농지. 이 땅은 서울에 거주하는 최 모씨가 세컨하우스를 짓기 위해 3년 전 매입했다. 그런데 농지 전수 조사가 시작되면서 매입 가격의 절반 수준에 처분을 의뢰했다. 하지만 문의조차 없다고 한다. 농사도 지을 수 없고,그렇다고 당장 집을 지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현재 이 땅은 잡초만 무성한 풀밭탑으로 변했다.[사진/정연수 기자]

 

“매입한 가격의 절반만 받아도 팔겠다는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의 전화조차 거의 없습니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물 장부를 넘기다 한숨부터 내쉬었다. 서울과 가까워 전원주택과 세컨드하우스 수요가 꾸준했던 설악면이지만 최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중개업소 벽면에는 농지와 임야 매물을 알리는 안내문이 여전히 빼곡하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은 드물다. 매물을 내놓겠다는 전화는 이어지지만 사겠다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예전에는 가격을 조금 낮추면 거래가 됐습니다. 지금은 가격 문제가 아닙니다. 농지를 샀다가 조사 대상이 되거나 처분명령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아예 쳐다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재명 정부가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을 앞세워 농지 전수조사와 투기성 농지 소유에 대한 강력한 단속 방침을 밝힌 이후 가평을 비롯한 경기북부 농촌지역의 토지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경자유전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헌법 제121조와 농지법에 이미 규정돼 있는 제도지만, 정부가 농지를 실제 경작하지 않는 소유자에 대한 조사와 처분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면서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정부는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된 농지를 우선 조사하고, 수도권과 경매 취득 농지, 농업법인·외국인 소유 농지 등 투기 우려가 큰 대상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농지 투기를 차단하고 식량안보 기반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그 충격은 투기세력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농지 거래와 개발을 기반으로 유지돼 온 가평과 경기북부의 영세 산업 생태계 전체가 동시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개발행위 신청서가 사라졌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인허가 대행업계와 건축·토목설계사무소다. 가평지역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농지 단속 강화 방침이 알려진 이후 개발행위허가와 농지전용을 상담하거나 신청하려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개발행위 신청 물량이 과거의 5분의 1 수준까지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한 토목설계업체 관계자는 책상 위에 쌓인 몇 개의 서류철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 같으면 농지전용이나 토지형질변경, 진입도로 개설과 관련된 상담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진행 중이던 사업도 중단하거나 보류하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규 의뢰는 사실상 끊겼다고 봐야 합니다.”

 

건축설계업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농지에 전원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 소규모 창고 등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허가뿐 아니라 개발행위허가와 농지전용허가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토지 거래가 멈추면 설계와 측량, 인허가 대행 업무도 함께 사라진다.

 

가평군도 건축허가 과정에서 개발행위허가와 농지전용허가, 산지전용허가 등이 수반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농지 거래 한 건이 측량과 설계, 토목공사, 건축으로 연결되는 구조인 것이다. 한 건축사는 “사무실 문은 열어 놓고 있지만 새로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다”며 “직원을 줄여야 할지 고민하는 사무소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내놓아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거래 절벽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으로는 설악면이 꼽힌다. 설악면은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쉬워 서울과 경기 외지인들의 농지·임야 매입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지역이다. 전원주택이나 세컨드하우스를 꿈꾸며 농지를 취득한 외지인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토지주는 과거 매입가격보다 크게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급한 경우 “절반 가격이라도 좋으니 팔아 달라”고 중개업소에 부탁하지만 거래는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고 한다. 설악면의 한 중개업자는 “싸게 나온 땅을 찾는 전화보다 보유하고 있는 농지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더 많다”며 “가격이 떨어져도 매수자가 없으니 사실상 시장 자체가 멈춘 상태”라고 전했다.

 

중개업소도 직격탄을 맞았다. 농촌지역 부동산중개업소는 아파트 전·월세보다 토지 거래 의존도가 높다. 농지와 임야 거래가 끊기면 사실상 수입원을 잃게 된다. 사무실 문을 열어 놓아도 한 달 동안 계약서 한 장 작성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포클레인이 멈추자 주유소와 철물점도 멈췄다  

 

농지 거래 중단의 충격은 부동산과 설계업계에 그치지 않는다. 토지를 매입해 개발행위허가를 받으면 측량과 설계를 거쳐 토목공사가 시작된다.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투입되고 석축과 옹벽, 배수로가 만들어진다. 이후 건축공사가 시작되면 레미콘과 철근, 목재, 전기·설비 자재가 필요하다.이 과정에서 중장비업체와 골재업체, 레미콘회사, 주유소, 철물점, 건축자재상, 지역 식당까지 일거리가 생긴다. 그러나 토지 거래와 개발행위 신청이 동시에 줄면서 이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다.

 

한 중장비업자는 “전에는 작은 축대나 진입로 공사라도 꾸준히 들어왔는데 지금은 장비를 세워 놓는 날이 더 많다”며 “굴착기가 움직이지 않으면 기름도 안 쓰고, 부품도 안 사고, 기사들도 식당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 주유소 관계자도 “덤프트럭과 굴착기 등 공사용 차량의 주유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철물점과 건축자재업계에서는 외상거래가 늘고 대금 회수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농지 거래 한 건의 중단이 중개업소와 측량·설계업체를 거쳐 중장비, 주유소, 철물점, 식당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는 ‘도미노 불황’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 가평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은 가평군에 국한되지 않는다. 포천·연천·양평 등 농지와 임야의 비중이 높고 전원주택이나 소규모 개발 수요에 지역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 온 수도권 외곽지역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개발행위허가는 이미 수년째 감소세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국토정보공사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전국 개발행위허가는 16만9,319건으로 2024년보다 9.0% 감소했다. 2023년에는 전년보다 15.7%, 2024년에는 다시 9.4% 감소했다.

 

이는 개발행위 감소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새롭게 시작된 현상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고금리와 건축비 상승, 인구 감소, 부동산경기 침체가 먼저 시장을 짓눌렀고, 여기에 농지 전수조사와 단속 강화에 대한 불안감이 겹치면서 농촌 토지시장의 냉각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따라서 모든 거래 감소의 원인을 경자유전 정책 하나로 돌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반대로 전국 통계만을 앞세워 가평과 경기북부에서 감지되는 급격한 현장 위축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투기는 막되 선의의 소유자와 지역경제는 살려야  

 

농지 투기를 막고 실제 농업인이 농지를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목표는 부정하기 어렵다. 농지를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상품으로 방치해서도 안 된다.문제는 정책의 속도와 집행 방식이다.

 

농업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했지만 고령이나 질병, 직장 이동 등으로 직접 경작하기 어려워진 사람과 처음부터 투기를 목적으로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사람을 같은 잣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농촌지역에서는 소규모 건축과 토목 개발이 지역 일자리와 자영업 매출을 떠받치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농지 보전이라는 원칙과 농촌경제 유지라는 현실 사이에서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가평군 역시 기다릴 때가 아니다. 정부 정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개발행위허가와 농지전용, 건축허가, 토지 거래량의 월별 변화를 공개하고 인허가·설계·건설업계와 긴급 간담회를 열어야 한다.

 

가평군 6개 읍·면 가운데 어느 지역과 업종이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는지 실태조사도 필요하다. 영세 설계사무소와 중장비업체,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경영지원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설악면 중개업소 관계자는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농지 투기를 잡아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투기꾼을 잡겠다고 시장 전체가 얼어붙도록 내버려 두면 결국 피해는 이곳에서 먹고사는 주민들이 봅니다.”

 

경자유전은 농지를 살리기 위한 원칙이다. 그 원칙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농촌의 실물경제와 주민들의 생계까지 멍들게 해서는 안 된다.투기는 막되 정상적인 거래와 이용의 길은 열어 놓아야 한다. 지금 가평과 경기북부의 현장이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규제 철회가 아니라, 농지 보전과 지역경제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세밀한 출구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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