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선충에 감염된 잣 나무를 잘라 비닐로 덮은 모습이 마치 공동 묘지를 연상케 한다.(사진/정연수 기자)
가평의 대표적 명물 잣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 소나무의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에 이미 감염됐거나 확산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 잣나무, 해송 등에 기생해 나무를 갉아 먹는 선충이다. 북방수염하늘소와 솔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에 기생하며, 이를 통해 나무에 옮겨 고사 시키는 것으로 일단 걸리면 감염된 나무뿐 아니라 주변 나무들까지 제거해야 할 정도로 잣나무에는 치명적이다.
이 때문에 가평군 산림 자원의 효자 품목인 잣 생산량은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편집자 주-
[NGN 뉴스=가평] 정연수 기자=잣나무 에이즈(AIDS) 재선충으로 가평군 잣 생산량이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국내 잣 총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가평 잣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의 잣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평군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386만 4,445kg의 잣을 수확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7년엔 1,733만 247kg을, 2018년에는 2016년과 비교해 1/20 수준에 그쳤으며, 2016, 2017년 생산량과 비교해도 1/9 수준에 불과했다.
잣 생산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2016년 263억 8,900만 원이었던 것이 2018년엔 17억 5,900만 원에 불과했으며, 이는 2016년 대비 1/15 수준으로, 잣 소득이 해마다 곤두박질 하고 있음이 통계로 확인된다.
2018년 이후에도 높은 기온과 재선충 등으로 잣 생산량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생산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잣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불과 3~4년 전 1kg 5만 원 안팎이었던 잣 값이 11-13만 원으로 2배 이상 폭등했다.
이처럼 몸값이 비싸다 보니 잣 소비도 위축되어 거래마저 안 된다. 지역 경제에 주요 소득원이었던 잣 산업이 쇠락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기온상승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분석된다. 1912년 이래로 지구온난화와 도시화 효과로 평균 1.5도가 상승했다. 특히 여름철보다는 겨울철의 최저 기온이 크게 상승하였고, 강수의 횟수보다는 집중 호우로 강수량이 증가한 것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 여파로 1990년대의 겨울은 1920년대에 비해 약 30일 정도 짧아졌지만, 여름과 봄은 20일 정도 길어져 개나리 벚꽃 등 봄꽃의 개화 시기도 빨라졌다.
이 같은 기후변화는 식생에도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온난화에 따라 녹차는 전남 보성에서 경남 고성으로, 사과는 대구에서 가평과 영월로, 한라봉은 제주에서 전북 고창, 복숭아는 경북 경산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고 있다.
추운 지방에서 서식하는 잣나무도 기온 상승으로 서식 한계선에 도달했다고 산림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평군의 잣 생산량이 감소하는 가장 큰 원인도 바로 기온 변화에 있다.
최근 가평군에서 수확되는 잣 생산 지역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가평군에서 가장 큰 잣 관련 사업을 하는 J씨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 소유의 잣 군락지는 비교적 고도가 낮은 곳에 있습니다. 낮은 지역의 잣나무에선 잣을 거의 수확 하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J 씨는 또, “잣이 열매를 맺어야 하는 시기에 햇볕이 너무 강렬해 잣송이가 검붉게 타는 소위 불을 먹어버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죠.”라고 덧붙였다.
반면,해발 700미터 이상 고지대인 도유림, 국유림에 서식하는 잣나무에선 우량 품종의 열매를 맺고 있다고 J 씨는 전했다.
가평군 잣 가공업자들이 사들인 1천여 가마의 잣도 대부분은 고산지에서 채취된 것으로 알려진다.또한 가공업체들이 매입한 잣 대부분은 강원도 정선 등지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기후변화로 잣의 고장이라는 가평군의 명성도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잣나무의 천적 재선충
앞서 1부 보도에서, 가평군 6개 읍. 면 가운데 북면 지역만 제외한 지역은 재선충으로 벌목된 잣나무도 외부 반출이 전면 금지돼있다. 아무리 수령이 좋아도 목재로 사용할 수 없고 파쇄 처리하거나 땅에 묻어야 하는 실정이다.
재선충에 감염되면 해당 나무를 중심으로 반경 25미터 이내의 나무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재선충에 감염되면 별도의 관리뿐 아니라 “해당 나무는 2년간 잣을 채취 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금지”한다.
기온상승 및 재선충 확산, 예방 및 치료를 위한 항공방제 불가 등등 잣 생산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먹구름이 가평군 잣나무 숲을 무겁고, 두텁게 덮고 있다.
■늙은 수령...일제 강점기와 박정희 정권 때 심은 수령 70년
가평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잣나무들은 일제 강점기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산림녹화사업으로 식재된 것들로, 수령 70년 이상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잣나무는 묘목을 심고 25년 이상이 돼야 잣 생산이 가능하다. 수령이 오래된 가평군 관내 잣나무들은 잣송이는 많이 열린다. 하지만 잣알맹이는 작은 작은 대신 향기는 타 지역 잣에 비해 진하다.
반면 수령이 40~60년 된 포천, 강원도 홍천 지역의 잣은 송이는 적게 열리고, 가평 잣에 비해 향기와 맛도 싱겁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대신 이들 지역에서 생산되는 잣은 알이 굵어 인건비 절약과 소비자들이 선호하고 있어 잣 생산 및 판매업자들이 선호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원 지역에서 생산된 잣들이 가평으로 유입되어 가평 잣으로 팔리는 이른바 “포장 갈이”현상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잣 생산량이 감소하는 원인 중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 극약 처방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재선충 확산과 잣나무의 고목화 (古木) 현상은 인재(人材)로 보아도 무방하다.
재선충 또한 관계 당국의 노력만으로 박멸할 수는 없어도, 피해 면적과 확산 방지는 노력 여하에 따라 감소 및 축소 시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현실은 비관적이다.
또한 잣나무의 수령이 70년 이상 되었음에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결과가 오늘과 같은 현상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먹거리 잣을 외국에서는 “Korea Pine"이라고 한다. 이 대표적 먹거리인 잣의 원조는 가평이다. 하지만 가평 잣의 쇄락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대안이 시급하다.
연속 기획 제3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