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 위기 시대의 경쟁력
가평에서 벼농사를 지어온 농민으로서 최근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가평쌀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가평쌀의 경쟁력은 특정 기술이나 일회성 성과가 아니라, 자연 조건과 농법, 그리고 이를 지속해 온 사람의 축적된 선택에서 비롯된다.
▣ 가평의 가장 큰 강점은 물이다.
산지가 많은 지형 특성상 계곡에서 내려오는 차고 깨끗한 물이 논으로 유입된다. 이 물은 여름철에도 논의 수온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해 준다. 최근 수년간 여름 평균 기온이 37도 안팎까지 상승하면서, 논 수온 상승으로 인한 벼 스트레스는 전국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수온이 높아질수록 벼는 생육 과정에서 부담을 받게 되고, 이는 밥맛 저하로 직결된다.
이 점에서 가평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계곡수 유입으로 수온 변화 폭이 크지 않고, 일교차가 뚜렷하다. 과수 재배에서 일교차가 당도에 영향을 미치듯, 벼 역시 생육 환경의 안정성과 일교차에 따라 미질이 달라진다. 가평쌀이 씹을수록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이 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 재배 방식 역시 중요한 요소다.
현재 가평군 농경지의 약 절반은 친환경 농법으로 관리되고 있다. 화학비료 사용을 최소화하거나 배제하고, 군에서 지원하는 퇴비를 활용하며, 제초는 우렁이 농법에 의존한다. 노동 강도는 높고 수확량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미질 측면에서는 해마다 안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품질은 이미 공공 급식 현장에서 검증되고 있다.가평 관내 학교 급식은 물론, 안양·군포 등 수도권 지역으로 연간 약 600톤의 가평쌀이 공급되고 있다. 여기에 관내 소비와 농협 계통 판매 물량까지 더하면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수도권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평쌀을 찾는다’는 반응은 현장 농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다.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문제는 단순한 생산량이 아니라 구조다. 제한된 농지 면적 속에서 일정한 품질 기준을 유지하려면, 개별 농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좋은 농법이 확산되고, 농가 간 품질 기준이 공유되어야 비로소 지역 브랜드로서의 신뢰가 형성된다.
가평에는 쌀연구회와 농촌지도기관의 지원 체계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이제는 외부 연구 성과를 ‘도입’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현장 농민이 주도적으로 품종과 재배 방식을 선택·검증하는 단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가평의 기후와 수자원 조건에 최적화된 품종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브랜드 전략이다.
가평쌀은 맛, 품질,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음에도 전국적 인지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는 홍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품목별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브랜드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쌀은 쌀로, 과일은 과일로 각각의 가치와 특성을 드러낼 때 소비자 인식도 명확해진다. 브랜드는 장식이 아니라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가평쌀은 충분히 지역 특산물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기후 위기 속에서도 물과 농법으로 품질을 지켜온 쌀이라는 점에서, 가평쌀은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농사를 지어온 사람으로서, 이 가치가 보다 객관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되기를 바란다.
가평쌀의 경쟁력은 이미 현장에 있다.이제 필요한 것은 이를 정확히 설명하고,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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