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평·포천서 8,483그루 고사…경기도 전체 피해의 20% 집중
- 도내 피해목 9만9,587그루로 증가…가평 등 5개 시·군에 피해 90% 집중
- 경춘국도 따라 북한강 산자락 곳곳 붉게 변해…소나무·잣나무 집단 고사 우려
- 경기도 140억원 투입해 맞춤형 방제…산불·강풍 대비 고사목 제거도 시급
단풍이 아니다. 숲이 죽어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46번 경춘국도를 따라 가평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길.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 산자락 곳곳이 붉게 물들어 있다. 언뜻 보면 가을 단풍이 시작된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춘천.가평을 잇는 경춘국도 46호 주변,가평군 보납산 정상이 재선충으로 붉게 변했다.[사진 정연수 기자]
사계절 푸르러야 할 소나무와 잣나무가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푸른 숲 사이로 붉게 변한 나무들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일부 산자락에서는 고사목이 밀집한 모습도 확인된다. 소나무 재선충병이 남긴 상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특정 산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기 가평군과 포천시를 비롯해 강원 춘천시와 홍천군 등에서도 재선충병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과 강원도를 연결하는 산림 곳곳에서 소나무와 잣나무가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가평·포천 고사목 8,483그루…경기도 최대 피해 지역
현장에서 목격한 산림의 변화는 경기도가 발표한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경기도가 지난 4월 1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부터 올해 4월 7일까지 가평군에서 발생한 재선충병 피해 고사목은 5,246그루, 포천시는 3,237그루로 집계됐다. 두 지역의 피해 고사목만 8,483그루에 달한다. 당시 경기도 전체 피해의 약 20%가 가평과 포천에 집중된 것이다. 피해는 이후에도 확대됐다.
경기도가 7월 3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도내 재선충병 피해목은 전년 5만9,351그루에서 올해 9만9,587그루로 약 67.8% 증가했다. 특히 가평군은 전년 대비 피해가 5.2배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평·양평·포천·남양주·광주 등 5개 시·군에 경기도 전체 피해의 약 90%가 집중됐다.
가평읍 줄길리 마을 잣나무도 재선충으로 붉은 빛으로 병들었다.[드론 정연수 기자]
재선충병 발생 지역도 확대되는 추세다. 2022년 18개 시·군이었던 경기도 내 발생 지역은 올해 23개 시·군으로 늘었다. 경기도가 가평과 포천을 중심으로 고강도 방제에 나섰지만 피해 확산을 차단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 한 번 감염되면 사실상 회복 불가능…잣나무 숲도 위협
소나무 재선충병은 크기 1㎜ 안팎의 재선충이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을 통해 나무 내부로 침입하면서 발생한다. 재선충이 증식하면 나무의 수분 이동에 장애가 생겨 잎이 누렇게 변하고 결국 말라 죽게 된다. 일단 발병해 증상이 진행된 나무는 회복시키기 어렵다.
특히 가평은 소나무뿐 아니라 잣나무가 넓게 분포한 지역이다. 재선충병은 잣나무에도 피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산림 생태계는 물론 지역의 산림자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감염목을 제때 찾아내 제거하지 못하면 매개충을 통해 주변의 건강한 나무까지 감염될 수 있다. 단순히 고사목 몇 그루를 제거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 죽은 나무가 또 다른 재난으로…산불·강풍 위험까지
재선충병의 피해는 나무가 말라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사목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지와 줄기가 약해져 강풍이나 폭설에 부러지거나 쓰러질 위험이 커진다. 도로와 주택, 전력시설 주변에서는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전력선 주변의 고사목이 쓰러지면 전선 손상에 따른 정전이나 전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경사가 급한 산지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뿌리가 부패하면서 토양을 붙잡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 다만 실제 산사태 위험은 지형과 지질, 강우량, 주변 식생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산불이다. 바싹 마른 가지와 고사목이 산림에 밀집해 있으면 산불 발생 시 연료 역할을 하면서 피해를 키울 수 있다. 강풍까지 겹치면 불길이 인근 산림이나 주택으로 번질 위험도 커진다. 피해목을 벌채한 뒤에도 관리가 필요하다. 재선충 확산을 막기 위해 현장에서 훈증 처리한 벌채목 역시 산불 위험을 고려해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염목 제거와 함께 주민 생활권 주변의 위험목을 우선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경기도 140억원 투입…피해 확산 막을 수 있나
경기도는 재선충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140억원을 투입해 지역별 맞춤형 방제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산림청과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한 방제 컨설팅 회의를 열고 가평·포천 지역의 고사목 신속 제거와 방제 전략을 논의했다.
7월에는 피해 수준에 따라 방제 방법을 차별화하는 광역방제전략을 발표했다. 가평·양평·포천·남양주·광주 등 피해가 심한 5개 시·군에서는 감염목 제거와 함께 다른 수종으로 바꾸는 수종 전환, 일정 구역의 감염목을 모두 제거하는 소구역 모두베기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가평·양평·남양주·광주 지역의 600㏊를 대상으로 드론을 활용한 무인 항공방제도 실시할 계획이다.
피해 확산을 막아야 하는 지역에는 예방 나무주사와 감염목 제거를 병행하고, 피해가 적은 지역에서는 감염목 전량 제거를 통해 청정지역 전환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가평읍 대곡리(사그막) 잣나무도 재선충으로 고사하고 있다.[사진/정연수 기자]
그러나 가평의 피해가 전년보다 5.2배 증가한 상황에서 방제사업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지속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감염목 제거 실적뿐 아니라 신규 감염 발생률, 방제지역의 재발 여부, 고사목 처리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 단풍으로 물들어야 할 산이 병들어 간다
가평과 포천의 산림은 수도권 북부의 중요한 자연자원이다. 특히 북한강을 따라 펼쳐지는 소나무와 잣나무 숲은 지역의 관광자원이자 주민의 생활환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재선충병으로 산림 곳곳이 붉게 변하면서 그 가치를 위협받고 있다.
경기도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방제에 나섰지만 중요한 것은 예산 규모나 벌채 실적만이 아니다. 피해 확산을 얼마나 억제하고, 죽어가는 숲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특히 가평과 포천처럼 피해가 집중된 지역에서는 정밀 예찰과 감염목 제거, 매개충 방제, 벌채목 사후관리까지 연결되는 종합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재선충으로 고사하고 있는 잣나무, 46호 경춘국도 춘천방향 춘천시 안보리.[드론 정연수 기자]
주택과 도로, 전력시설 주변의 위험목을 우선 제거하고 산불 취약지역에 대한 예방 조치도 강화해야 한다. 46번 경춘국도를 따라 춘천으로 향하는 길. 북한강 너머 산자락에는 여전히 붉게 변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단풍은 계절이 지나면 다시 푸른 잎으로 돌아오지만, 재선충병으로 말라 죽은 소나무와 잣나무는 돌아오지 않는다.
죽어가는 것은 나무 한 그루가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자라난 숲이며,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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