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4부] 기지촌, 치열한 삶의 흔적이 된 공간
동두천의 숨겨진 역사,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NGN뉴스=사람 이야기]양상현 기자=기지촌. 그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미군 기지 근처에 형성된 유흥가를 떠올린다.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 바, 그리고 여성들이 기지촌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복잡한 삶의 이야기, 그 삶을 지탱해온 다양한 사람들과 직업들은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역사다. 기지촌은 단순히 외국 군대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은 사회였다.
▣ 기지촌, 생계와 문화의 복합체
기지촌의 골목을 걷다 보면 그곳은 그저 유흥업소로만 가득 차 있지 않았다. 미군들의 요구에 맞춘 테일러샵이 한집 건너 자리잡고 있었고, 서양식 양복을 만드는 기술이 그곳에서 꽃을 피웠다. 초상화나 인두화(뜨거운 도구로 나무를 태워 그리는 그림)를 그리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기지촌은 그 자체로 독특한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교류를 넘어,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며 새로운 표현 방식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음식 또한 기지촌의 독특한 요소 중 하나였다. 햄버거, 피자, 스테이크 같은 서양 음식부터 한국의 라면, 김밥, 튀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기지촌은 마치 국제적인 시장처럼 다양한 음식과 문화를 한데 모은 공간이었다. 이러한 다채로움은 동두천의 주민들에게 새로운 맛과 문화를 소개하며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기지촌의 그늘,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살아온 사람들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삶은 대개 고통스럽고 힘겨웠다. 그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던 약국이 기지촌 곳곳에 자리했던 것은 그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한다. 기지촌에는 'PAWNSHOP(전당포)'이라는 미군 물품을 사고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재도구와 귀중품을 팔고 또 사들였다. 이 모든 것은 기지촌이 그저 미군의 욕구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스스로 삶을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던 테일러, 예술가, 약사, 음식점 주인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쉽게 잊혔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지만, 그 삶의 흔적은 제대로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못했다. 기지촌의 여성들이 겪은 고통은 비참했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직업과 삶의 방식이 공존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한다.
▣ 기지촌의 역사를 박물관으로
성병관리소를 보존하고 리모델링하여 그곳에 동두천의 발전과 치열한 삶을 조명하는 박물관이 세워진다면 어떨까? 그 박물관은 단순히 기지촌을 비판하거나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이루어낸 문화적 교류와 생존의 흔적을 담아내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 박물관은 기지촌의 여성들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테일러샵에서 양복을 만들던 사람들, 초상화를 그리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이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낸 요리사들까지, 그 모두가 기지촌의 역사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동두천의 자부심을 살려내는 이야기
우리는 동두천의 기지촌을 단순히 부끄러운 과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그곳에서 일구어낸 작은 문화, 생활의 흔적은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성병관리소가 새로운 박물관으로 변모하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 된다면, 동두천 사람들의 자부심을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동두천이 그저 지나가는 작은 도시가 아니라,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삶의 흔적이 깊이 새겨진 곳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여기에 있다. 기지촌을 통해 우리는 동두천이 단순한 유흥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피어난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있는 장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박물관은 그들의 치열한 삶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공간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동두천은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