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번째 이야기】 퇴임 직전 기자 ‘토사구팽’... 군청 출입 금지 보복
순박한 6만 3천여 군민의 기억에서 잊힌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였으나, 금배지를 달아보겠다며 군수 때 보다 더 보폭을 넓히고 있는 그를 보며 침묵할 수 없어 고백을 결심하였다.
기자이기에 앞서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지난 5년간 가까운 거리에서 본 그의 위선을 유권자에게 사실 그대로를 알려 다시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이 글이 그에게 자성(自省)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편집자 주-
[NGN 뉴스=포천·가평] 정연수 기자=그와의 인연은 10년 전인 2013년 추석 무렵이다. 당시 그는 선거법 위반 등으로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 풀려나 항소심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 후 5년여간 그와 딱히 연락 할 이유도 특별히 만나야 할 동기도 없었다. (2013년 당시의 이야기는 차차 자세하게 밝힐..)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그가 당선되고 다음 날인 6.14일, 그의 측근들로부터 그를 만나 보자는 제안을 받으면서 그와의 인연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6.14일 저녁 현리에 있는 모 식당에서 측근들과 그를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이 ‘내 삶의 최악 실수’로 기억된다.
설악면에서 태어난 기자는 7살 때 서울로 갔다. 가평이 고향이지만 아는 이도 그 흔한 초등학교동창도 없는 낯선 곳이다.
딱히 가평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었으나, KBS에 근무할 때 취재원으로 만난 가평에 사는 부동산 사기꾼 이O택(부인은 군청에 근무 중))에게 사기를 당해 2008년 7월부터 16년째 살고 있다.(사기꾼은 출소후 가평.춘천을 활보하고 있다)
1986년부터 2008년까지 22년간 방송 이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기자는 사기를 당하고 여의도까지 출·퇴근할 차비가 없어 직장을 그만둘수 밖에없는 처지였다.
가족이 살던 아파트까지 사기꾼에게 빼앗기고 길에 나 앉은 기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막 노동판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3선에 당선되고 다음 날, 2018년 6.14일 그와 그의 측근들이 찾아와 지원을 해 줄테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생소한 ‘인터넷 언론’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4년 간 이용만했을 뿐, 밥 한끼 사거나 얻어 먹지도 않았다. 오히려 뜻하지 않게 생면부지의 여성 세분의 도움으로 카메라와 사무실 집기 등을 마련할 수 있었고, NGN뉴스가 성장할 수 있었 던 원동력이라고 느끼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어렵게 지역 언론을 시작했으나 수십 년간 지역에서 양지만 찾아 배를 불리던 기득권자들로부터 “시기. 질투, 음해” 등등 “온갖 수모와 민·형사 소송을 당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누구를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고향 가평의 발전과 안녕, 군민의 이익을 위해 때론 쓴소리’를 전달했다.
기득권자들이 돌을 던질수록 NGN뉴스는 더욱 강해졌고, 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차별화로 자리 매김을 했다고 자부한다.

2022.7월 가평군청이 본보에 전달한 출입금지 통보 공문서[출처=가평군]
그런데 2022년 7월, 당시 감사담당관이었던 P 씨와 홍보팀장 J 씨로부터 “가평군청 출입 기자 등록제외 및 군 홍보자료 미제공” 통보를 받았다.
기자는 평소 가평군청이 언론사에 배포하는 홍보자료는 광고지 수준이라서 인용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특별하게 출입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 주요일정이 있을 때만 군청을 출입했다. 현재도 본보는 가평군 홍보자료를 안 받는다.
그런데 “출입 금지 통보”를 받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NGN 뉴스에 대한 ‘모욕과 보복’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에게 구체적인 이유를 밝힐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P 과장과 J 팀장은 해명도 못하고 일주일 후 슬그머니 철회했다.
당시 해당 공문서를 갖고 온 J 팀장은 “홍보팀장이었던 T 팀장을 왜? 인사팀장으로 발령하게 했냐?”라는 항의를 기자에게 했다.
이에 “군수를 보필하다 지역 기자에게 시달려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았으니 도의적 차원에서 인사를 한 것은 잘한 일이고, 기자도 이런 점을 고려해 줄 것을 조언했다”라며 이유를 J 팀장에게 분명하게 확인해 주었다.
군청이 출입금지 통보를 하기 전인 5월, 기자는 “금요일만 되면 과장·팀장들이 연차를 사용해 민원 업무가 차질을 빚고 있다.” “퇴임을 앞둔 군수가 ‘알박기 인사’를 하려 한다.”며 문재인 정권과 닮았다는 비판 보도를 했다.
해당 보도는 해외에 간 그가 건설도시국장 자리에 행정직 S과장을 승진시켜려 마음 먹고 있다는 소문이 계기였다.
당시 그를 수행했던 믿을 만한 관계자는 해외에서 비판 보도를 본 그가 “매우 불쾌해했다”라며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본보의 비판 보도가 나가자 여론을 의식한 그의 건설국장 알박기 인사는 실패했다. 대신 시설직 팀장이었던 N 씨를 산림과장으로 승진시키기 위해 고인이 된 L 과장에게 ‘산림조합장 출마를 빌미로 조기 명퇴를 종용했다’는 믿을 만한 소문이 다시 이어졌다.
실제로 그는 L 과장이 조기 퇴직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시설직 N 팀장을 산림과장으로 승진시켰다. 헛 소문이 아니었음이 확인됐다. 그리고 N 과장은 6개월여 만에 시설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처럼 기자의 비판 보도로 반쪽짜리 알박기 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는, 4년 간 자신을 도왔던 기자가 쓴 소리를 했다고 치졸한 방법으로 보복을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금배지를 꿈꾸고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 4년 간 희생하며 도운 기자를 마치 “토끼 사냥이 끝나자 충실했던 개를 삶아 먹듯 “토사구팽”했다.
다시 생각해도 그를 다시 만난 "2018년 6월14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날로 기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