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판다②] 배는 못 뜨는데 준설·빈차 버스…세금 삼키는 ‘천년뱃길’
- 정연수 기자
- 입력 2026.09.0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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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9톤급 크루즈는 수심, 85톤급 선박은 수초에 막혀
-150억 사업에 약 120억 투입 알려져…가평군, 전면 재검증해야

지난 5월 자라섬 선착장에 접안한 '가평크루즈'.[사진/정연수 기자]
가평군이 약 150억 원을 들여 추진한 ‘천년뱃길 사업’이 배는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군민 세금만 삼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핵심 노선인 자라섬 운항은 낮은 수위를 이유로 결항을 반복하고 있다. 가평크루즈 예약실은 지난 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수위가 너무 낮아 자라섬에 진입하지 못했다”며 “다음 주 운항도 수위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오는 19일부터 시작되는 자라섬 가을꽃축제 기간의 운항 여부도 확답하지 못했다. 공개된 시간표에는 월·화·목요일 주 3회 자라섬 노선이 편성돼 있지만, 실제 출항 여부는 그날그날 수위에 따라 결정된다는 설명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금·토·일요일에는 자라섬 노선 자체가 없다. 정기노선처럼 시간표는 걸어놓고 실제 운항은 장담하지 못하는 ‘조건부 뱃길’인 셈이다.
▣ 준설에 6천만 원…그래도 “수위 때문에 결항”
가평군은 최근 약 2천만 원을 들여 자라섬 선착장 주변을 준설했다. 399톤급 가평크루즈가 자라섬 선착장에 접안하려면 최소 2m가량의 수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과 가을에도 약 4천만 원을 투입해 준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2년간 자라섬 선착장 준설에만 약 6천만 원이 들어간 셈이다. 그러나 준설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약실은 여전히 낮은 수위를 이유로 결항을 안내하고 있다.
수천만 원을 들여 강바닥을 파냈는데도 같은 이유로 배가 들어오지 못한다면 준설공사가 실제 운항 여건을 얼마나 개선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가평군은 준설 위치와 범위, 준설량, 공사 전후 수심 변화, 실제 운항 가능 일수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준설공사의 성과는 공사를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후 배가 몇 차례 정상적으로 접안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 매년 강바닥 파낼 것인가
북한강은 댐 방류량과 강수량에 따라 수위가 달라지고 토사도 계속 쌓인다. 한 차례 준설로 일시적인 수심을 확보하더라도 다시 토사가 퇴적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그렇다면 천년뱃길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또는 계절마다 준설비를 투입해야 하는 구조인지 따져봐야 한다.
자라섬 선착장 주변에서 준설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정연수 기자]
가평군은 사업 초기 시설비뿐 아니라 앞으로 반복해서 들어갈 준설비와 선착장 관리비, 시설 보수비 등 장기적인 유지관리 비용까지 검토했어야 한다. 준설 직후에만 잠시 배가 들어오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운항이 어려워진다면 선착장 위치 자체가 적절한지도 재검토해야 한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준설을 결항 때마다 반복하는 것은 군민 세금을 계속 강바닥에 쏟아붓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작은 배도 수초에 막혔다
문제는 수심만이 아니다. 399톤급 가평크루즈보다 훨씬 작은 85톤급 청평페리의 ‘커브드아일랜드호’도 자라섬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는 수초가 문제다. 선박사 측은 선착장 주변에 일정 수심이 확보돼 있더라도 수면을 덮은 수초가 선박 엔진의 냉각장치로 유입되면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형 크루즈는 낮은 수심 때문에 들어가기 어렵고, 소형 선박은 수초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준설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계절별 수위 변화와 토사 퇴적, 수초 발생, 선박의 흘수와 엔진 냉각 방식, 선착장 위치와 접안 구조를 종합적으로 다시 조사해야 한다.
수초 때문에 자라섬 선착장 접안이 어렵다는 '커브디아일랜드호'[사진/정연수 기자]
선박이 선착장에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는 수상 관광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했어야 할 기본 조건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선착장과 부대시설부터 조성했다면 단순한 시행착오가 아니라 사업 타당성 검토의 실패다.
▣ 약 120억 원 투입…성과는 ‘당일 확인’
가평군은 약 150억 원을 들여 북한강 천년뱃길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약 120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고도 자라섬 노선은 월·화·목요일 주 3회, 하루 한 차례에 불과하다. 이마저 수위가 낮으면 취소된다. 예약실조차 특정 날짜의 운항 여부를 사전에 확답하지 못하고 “그날그날 확인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약 120억 원을 투입한 관광사업의 결과가 ‘당일 수위를 확인해야 탈 수 있는 배’라면 군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운항 부진의 실제 원인이 수심뿐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승객 부족이 운항 여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계획 대비 실제 운항 횟수와 결항 사유, 회차별 승선 인원과 매출을 공개해야 한다. 수심을 이유로 내세우면서 정작 이용객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운항 부진을 둘러싼 의혹만 커질 수밖에 없다.
가평크루즈 운항표에는 주3회 자라섬까지 운항하는 것으로...[출처/가평크루즈 홈페이지]
배는 결항, 순환버스는 바람만 싣고 달린다 천년뱃길 사업의 부실은 크루즈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평군은 크루즈 운항시간에 맞춰 관내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순환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크루즈가 결항하거나 이용객이 없으면 버스 역시 승객 없이 도로만 오가는 빈차 운행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 배가 뜨지 않는데 버스부터 돌리는 행정
불안정한 크루즈 운항이 선착장 준설비에 이어 순환버스 운영비까지 삼키는 구조다. 크루즈와 버스가 관광객이 아니라 군민 세금만 싣고 강과 도로를 오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가평군은 순환버스의 운행 횟수와 차량별 탑승 인원, 하루 평균 이용객, 위탁운영비와 이용객 1인당 투입 비용을 공개해야 한다. 이용객이 없다면 정기운행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크루즈의 실제 운항 여부와 예약 인원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실패다
가평군은 이미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는 이유로 사업성이 불투명한 천년뱃길을 계속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면 선착장을 이전하거나 노선을 변경하고, 선박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업 축소나 중단까지 검토하는 것이 추가적인 혈세 낭비를 막는 길이다.
“여기까지 투자했으니 계속해야 한다”는 논리는 행정의 일관성이 아니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매몰비용 집착이다. 천년뱃길의 성패는 보도자료나 운항 시간표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실제로 배가 몇 차례 자라섬에 들어갔고, 몇 명의 관광객을 실어 날랐으며, 지역경제에 어떤 효과를 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가평군은 이제 답해야 한다.최근 2년 동안 준설에 약 6천만 원을 투입하고도 왜 배가 들어가지 못하는가. 약 120억 원을 어디에 사용했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가. 승객 없는 순환버스는 언제까지 도로를 돌아야 하는가.
배는 못 뜨고 버스는 비어 있는데 예산만 계속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더 이상 ‘천년뱃길’이 아니다.
군민 세금이 빠져나가는 ‘밑 빠진 뱃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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