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군은 무엇이 두려운가? 누구인지도, 전문성도 모르는 1,543개 자리…이들이 군민을 대표할 자격 있는가
- 정연수 기자
- 입력 2026.07.2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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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군에는 125개 위원회와 1,543개의 위원 자리가 있다. 인구 6만3천여 명과 비교하면 전체 군민의 2.45%에 해당하는 규모다. 주민 41명당 위원 자리 하나가 있는 셈이다. 숫자만 보면 주민 참여가 활발하고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군정에 폭넓게 반영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1,543개 자리를 실제 몇 명이 맡고 있는지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누가 어떤 경력과 전문성을 근거로 위촉됐는지, 몇 개 위원회에 중복으로 참여하는지, 누구의 추천을 받아 들어갔는지도 군민은 알 수 없다.
명단도, 자격도, 선정 과정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사람들이 가평군의 각종 정책과 사업을 심의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6만3천여 군민을 대신해 지역의 삶의 질과 발전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 1,543명 아닌 1,543개 자리…실제 사람은 몇 명인가
가평군이 공개한 ‘위원 1,543명’은 실제 참여 인원이 아니라 125개 위원회의 정원을 단순 합산한 숫자다. 한 사람이 5개 위원회에 위촉됐다면 1명이 아니라 5명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가평군민의2.45%가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는 전체 인구의 2.45%에 해당하는 ‘위원 자리’가 존재할 뿐이다. 그 자리를 실제 1,500여 명이 고르게 맡고 있는지, 아니면 수백 명의 특정 인사들이 여러 자리씩 나눠 갖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평군 위원회 운영의 불투명성이 드러난다.
지역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특정 단체 관계자와 퇴직 공무원, 행정기관 주변 인사들이 여러 위원회에 반복적으로 위촉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한 사람이 4~5개 위원회에 참여한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도 가평군은 중복 위촉 현황과 실제 위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위원회가 진정한 주민 참여기구라면 가장 먼저 밝혀야 할 것은 위원회 숫자가 아니라 참여자의 실체다. 누가 몇 개 위원회에 들어가 있는지조차 공개하지 못하면서 주민 참여를 말하는 것은 숫자에 기대어 행정의 개방성을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 전문성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검증했나
위원회는 명예직이나 지역 유지에게 나눠주는 자리가 아니다. 인허가, 도시계획, 건축, 농지, 환경, 복지, 보조금, 민간위탁, 재난안전 등 군민의 재산과 권리, 일상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안을 심의하는 공적 기구다. 그렇다면 위원에게는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과 현장 경험, 공정성, 독립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가평군이 공개한 자료만으로는 위원들의 전문성을 확인할 수 없다.
어떤 경력을 가진 사람이 농지위원회에 들어갔는지, 환경 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인물이 환경 관련 정책을 심의하고 있지는 않은지, 건축·안전·복지 분야의 현장 경험이 실제로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공개모집으로 선발했는지, 담당 부서가 추천했는지, 군수나 특정 단체와의 관계가 위촉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검증할 자료가 없다.
전문성이 확인되지 않은 위원이 집행부가 제출한 자료만 보고 손을 든다면 위원회는 심의기구가 아니라 행정 절차를 완성해 주는 도장 찍기 기구로 전락한다. 전문지식이 부족한 위원이 담당 공무원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위원회가 오히려 집행부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원 수만 늘리는 것은 주민 참여 확대가 아니다. 책임의 주체를 흐리고 행정 결정에 형식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이 될 위험이 크다.
▣ 과연 6만3천여 군민을 대표하는가
대표성 역시 의문이다. 가평군민은 농업인과 소상공인, 노동자, 청년, 여성, 장애인, 노인, 학부모, 귀촌인,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읍·면마다 생활환경과 이해관계도 다르다. 위원회가 주민 대표기구라면 이러한 지역과 계층의 목소리가 고르게 반영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자료로는 1,543개 자리가 어떤 지역과 계층에 배분됐는지 알 수 없다. 청년은 몇 명인지, 농업인과 소상공인은 얼마나 참여하는지, 장애인과 복지 대상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당사자가 포함됐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반면 행정과 가까운 특정 인사들이 여러 위원회에 반복적으로 위촉됐다면 이들은 6만3천여 군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행정이 선택한 소수의 ‘위원회 단골’일 가능성이 있다.
군민의 대표성을 갖췄는지는 위촉장 한 장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어떤 계층과 지역을 대표하는지, 어떤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있는지, 주민의 의견을 실제 심의 과정에서 어떻게 대변했는지를 통해 검증돼야 한다. 그런 검증 없이 “민간위원이 참여했다”는 사실만 내세우는 것은 주민 대표성을 행정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 군민 삶과 지역 발전을 맡길 적임자인가
위원회에서 다루는 안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각종 개발사업과 인허가, 재난 예방, 환경정책, 복지 지원, 보조금 배분, 민간위탁 기관 선정 등은 군민의 삶과 가평의 미래를 좌우한다. 위원 한 사람의 판단에 따라 사업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고, 특정 업체나 단체의 이해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위원이 심의에 참여하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이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민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가평군은 위원별 제척·기피·회피 현황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위원이 심의 대상 업체나 단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관련 사업에 직·간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군민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위원회가 535차례 열렸다는 횟수만으로 운영의 충실성을 평가해서도 안 된다. 원안 가결과 수정 가결, 부결, 보류가 각각 몇 건인지, 집행부 안건에 반대하거나 수정을 요구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대부분의 안건이 별다른 이견 없이 원안대로 통과됐다면 위원회가 실질적인 검증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회의에 참석해 수당을 받고 손을 드는 것만으로 군민의 대표자가 될 수는 없다.
▣ 이름뿐인 위원회와 반복 위촉부터 정리해야
지난해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위원회는 14개, 단 한 차례만 열린 위원회는 27개였다. 전체 125개 위원회 가운데 41개, 즉 32.8%가 1년 동안 회의를 열지 않았거나 한 번 개최하는 데 그쳤다. 안전관리민관협력위원회, 산사태취약지역지정위원회, 교통안전정책심의위원회, 양성평등위원회, 지역돌봄협의체, 환경교육위원회처럼 주민 생활과 밀접한 위원회도 미개최 명단에 포함됐다.
필요한 위원회인데도 열리지 않은 것이라면 직무를 소홀히 한 것이고, 열 필요가 없었다면 애초 위원회의 존립 이유를 재검토해야 한다. 이름만 걸어둔 위원회에 위원을 위촉해 놓고 주민 참여의 외형만 부풀려서는 안 된다.
가평군은 2년 이상 실질적인 활동이 없는 위원회를 폐지하거나 유사 위원회와 통합해야 한다. 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위원회 수에도 합리적인 상한을 두고, 동일 인물의 장기·반복 위촉을 제한해야 한다.
▣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가평군은 이제 위원회 숫자가 아니라 구성과 운영 실태를 공개해야 한다. 1,543개 위원 자리를 맡은 실제 인원, 개인별 중복 위촉 수, 소속과 직업, 전문 분야, 위촉 기간, 추천 경로, 공개모집 여부를 밝혀야 한다. 공무원과 퇴직 공무원, 산하기관 관계자, 특정 단체 추천 인사가 각각 얼마나 되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위원별 회의 참석 횟수와 연간 수당 총액, 안건별 원안·수정·부결 현황, 제척·기피·회피 내역도 군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가 필요한 부분은 일부 비식별 처리할 수 있지만, 이를 이유로 위원회 구성 전체를 비공개해서는 안 된다.
공적 권한을 행사하고 세금으로 수당을 받는 위원의 자격과 활동은 검증 대상이다. 공개를 꺼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제대로 된 전문성과 대표성을 갖춘 위원이라면 투명한 공개가 그들의 권위와 신뢰를 높일 것이다.
가평군의 1,543개 위원 자리는 전체 인구의 2.45%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자리를 실제 누가 차지하고 있는지, 어떤 전문성을 갖췄는지, 누구를 대표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런 상태에서 이들이 6만3천여 군민의 삶의 질과 가평의 발전 방향을 책임질 적임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가평군은 답해야 한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누구의 추천을 받아, 몇 개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가. 회의에서 어떤 의견을 냈으며, 얼마의 수당을 받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125개 위원회와 1,543개 위원 자리는 주민 참여의 상징이 아니다. 행정과 가까운 일부 인사들이 군민의 이름을 빌려 공적 자리를 나눠 가진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위원회는 자리를 나누는 곳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는 곳이어야 한다. 군민을 대표할 자격은 행정의 위촉이 아니라 전문성과 공정성, 투명성으로 증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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