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휴먼스토리] “34년, 민원 창구에서 가평을 지켜온 한 사람의 마지막 인사”

  • 정연수 기자
  • 입력 2025.12.01 10:05
  • 조회수 36,404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결론은 반드시 내드리는 게 제 원칙이었습니다…군민이 저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최돈목 가평군청 건설도시국장 퇴임

최돈묵1.JPG

2025년 12월 31일,34년의 공직을 마무리하는 최돈목 가평군청 건설도시국장.[사진/정연수 기자]

 

가평군청의 한 작은 방에서 34년 공직을 마무리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깊었다. 최돈목 가평군청 건설도시국장은 지난 1991년 2월, 공직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그보다 앞서 울산 국토정보공사에서 3년을 보내고 돌아온 경기도,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워서 좋겠다”고 선택한 가평은 그의 인생 전체가 되어 있었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힘들었던 순간들이더군요.” 그는 전국적인 재난 현장을 마주했던 안전재난과 시절을 떠올렸다. “재난을 당한 주민들은 당장 도움을 바라고 있는데, 행정이 가진 인력·예산의 한계 때문에 즉각적인 조치가 어려울 때… 그게 가장 아팠습니다.”

 

“민원인은 짜증낼 권리가 있다… 마지막까지 결론을 내드리고 싶었다”

 

최 국장은 오랜 시간 민원 부서에서 주민들과 마주했다. 그는 서류를 심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력자’를 자처했다. “민원인들, 대부분 아쉬워서 오시잖아요. 한 번에 끝날 일을 두 번, 세 번 오게 만들면 그분들 화내는 것, 당연한 겁니다. 공무원이 감당해야죠.”

 

그는 책상 위에 항상 두꺼운 메모지를 놓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 메모지는 동료가 아닌 ‘군민의 목소리를 받아 적는 종이’였다. “조그만 민원이라도 꼭 방향을 알려드리고 결론을 내드리는 것. 그게 제 원칙이었습니다. 그게 잘 해서라기보다, 당연한 책임이라 생각했죠.”

 

그래서일까. 주민들 사이에서 그는 ‘합리적이고 조용한 성격’, ‘소리 없이 일하는 공무원’으로 불렸다. 이에 대해 그는 “너무 좋게 봐주신 것”이라고 연신 손사래를 쳤다.

 

“가족이 있었기에 버텼습니다”… 34년의 뒤편에 있었던 이름 없는 헌신

 

그는 34년의 긴 공직 여정을 끝까지 지켜준 가족 이야기에 이르자 한동안 말을 멈췄다. “맞벌이하면서도 제 일을 배려해준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어렵죠. 지금도 고맙습니다.”

 

딸은 서울시 공무원으로, 아들은 직업군인으로 각자의 길을 성실히 걷고 있다. “자녀들이 자신만의 삶을 책임 있게 살아가는 걸 볼 때 가장 든든합니다.” 그의 표정은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했다.

 

학창 시절 강원도 사격 대표선수로 활약하고, 공직 생활 속에서도 배드민턴으로 동료들을 이끌었던 ‘운동 좋아하는 공무원’의 면모도 그의 삶을 채웠다.

 

“남은 한 달…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뿐입니다”

 

퇴직을 한 달 앞둔 그에게 아쉬운 점을 묻자, 그는 조용히 웃었다. “누구나 그렇겠죠. 동료들에게, 군민들께 더 잘해드릴 걸… 그런 생각이 듭니다.” 퇴직 이후 계획을 묻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며 웃음을 띠었다. “90까지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70까진 움직이면서 사회에 일원으로 기여하고 싶습니다.”

 

“우리 후배들, ‘심사’보다 ‘도와주는 마음’을 먼저 봤으면”

 

그가 후배 공무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단순했다. “심사보다 조력자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민을 다시 오게 하는 것만큼 큰 행정 실패는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걸었던 길을 이제는 더 젊고 똑똑한 후배들이 이어갈 것이라 믿었다. “그분들이 가평을 더 좋게 만들 겁니다.”

최돈묵4.JPG

“가평군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34년 공직자의 마지막 인사

 

인터뷰의 마지막, 그는 긴 호흡을 들이켰다.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저를 지켜봐 주신 군민들 덕분입니다. 가까이서, 멀리서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늘 건강하시고, 가평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소리 없이 묵묵했다. 민원 창구에서 주민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던 한 공무원의 34년은 화려한 경력보다, ‘배려’, ‘원칙’,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가평군청의 한 책상에서 조용히 메모지를 넘기던 그가 떠난 자리에는 여전히 주민의 민원을 적어 내려간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흔적들에서, 가평은 오늘도 누군가의 성실한 일상을 통해 지켜지고 있다.

ⓒ NGN뉴스 & ngnnews.net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제2경춘국도 첫 삽 떴지만…가평은 ‘보상·가평역 교량화’가 관건
  • 현직 이사회 의장이 이사장 후보 “공정·상식 맞나”...김구태 전 서기관 의장직 유지한 채 공모 지원 '논란'
  • “경기북부의 눈과 귀”…NGN뉴스 유튜브 구독자 6만 명 돌파
  • 성폭행 고소 되레 ‘무고’ 판단…경찰,가평군의원 A씨 검찰 송치
  • 시설공단 이사장 공모에 불거진 ‘모계 8촌설’…가평 술렁
  • “차이를 넘어 하나로”…경기도 장애인 생활체육인, 가평서 화합의 장.가수 노라조·장윤정 축하무대
  • “우리는 자라섬에 안 들어가면 더 좋죠”…가평군의 ‘크루즈 짝사랑’, 혈세로 또 준설
  • 폭우 뒤 터져 나온 함성…가평 G-SL, 음악역1939를 뜨겁게 달궜다
  • 예견된 이사장 공석, 왜 늑장 인선했나…‘특정 퇴직 서기관 맞춤형 인사’ 의혹
  • [직격인터뷰] 포천에 집 두고 가평 모텔살이…연제창은 왜 ‘한 달 살기’를 택했나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휴먼스토리] “34년, 민원 창구에서 가평을 지켜온 한 사람의 마지막 인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