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론은 반드시 내드리는 게 제 원칙이었습니다…군민이 저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최돈목 가평군청 건설도시국장 퇴임
2025년 12월 31일,34년의 공직을 마무리하는 최돈목 가평군청 건설도시국장.[사진/정연수 기자]
가평군청의 한 작은 방에서 34년 공직을 마무리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깊었다. 최돈목 가평군청 건설도시국장은 지난 1991년 2월, 공직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그보다 앞서 울산 국토정보공사에서 3년을 보내고 돌아온 경기도,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워서 좋겠다”고 선택한 가평은 그의 인생 전체가 되어 있었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힘들었던 순간들이더군요.” 그는 전국적인 재난 현장을 마주했던 안전재난과 시절을 떠올렸다. “재난을 당한 주민들은 당장 도움을 바라고 있는데, 행정이 가진 인력·예산의 한계 때문에 즉각적인 조치가 어려울 때… 그게 가장 아팠습니다.”
“민원인은 짜증낼 권리가 있다… 마지막까지 결론을 내드리고 싶었다”
최 국장은 오랜 시간 민원 부서에서 주민들과 마주했다. 그는 서류를 심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력자’를 자처했다. “민원인들, 대부분 아쉬워서 오시잖아요. 한 번에 끝날 일을 두 번, 세 번 오게 만들면 그분들 화내는 것, 당연한 겁니다. 공무원이 감당해야죠.”
그는 책상 위에 항상 두꺼운 메모지를 놓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 메모지는 동료가 아닌 ‘군민의 목소리를 받아 적는 종이’였다. “조그만 민원이라도 꼭 방향을 알려드리고 결론을 내드리는 것. 그게 제 원칙이었습니다. 그게 잘 해서라기보다, 당연한 책임이라 생각했죠.”
그래서일까. 주민들 사이에서 그는 ‘합리적이고 조용한 성격’, ‘소리 없이 일하는 공무원’으로 불렸다. 이에 대해 그는 “너무 좋게 봐주신 것”이라고 연신 손사래를 쳤다.
“가족이 있었기에 버텼습니다”… 34년의 뒤편에 있었던 이름 없는 헌신
그는 34년의 긴 공직 여정을 끝까지 지켜준 가족 이야기에 이르자 한동안 말을 멈췄다. “맞벌이하면서도 제 일을 배려해준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어렵죠. 지금도 고맙습니다.”
딸은 서울시 공무원으로, 아들은 직업군인으로 각자의 길을 성실히 걷고 있다. “자녀들이 자신만의 삶을 책임 있게 살아가는 걸 볼 때 가장 든든합니다.” 그의 표정은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했다.
학창 시절 강원도 사격 대표선수로 활약하고, 공직 생활 속에서도 배드민턴으로 동료들을 이끌었던 ‘운동 좋아하는 공무원’의 면모도 그의 삶을 채웠다.
“남은 한 달…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뿐입니다”
퇴직을 한 달 앞둔 그에게 아쉬운 점을 묻자, 그는 조용히 웃었다. “누구나 그렇겠죠. 동료들에게, 군민들께 더 잘해드릴 걸… 그런 생각이 듭니다.” 퇴직 이후 계획을 묻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며 웃음을 띠었다. “90까지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70까진 움직이면서 사회에 일원으로 기여하고 싶습니다.”
“우리 후배들, ‘심사’보다 ‘도와주는 마음’을 먼저 봤으면”
그가 후배 공무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단순했다. “심사보다 조력자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민을 다시 오게 하는 것만큼 큰 행정 실패는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걸었던 길을 이제는 더 젊고 똑똑한 후배들이 이어갈 것이라 믿었다. “그분들이 가평을 더 좋게 만들 겁니다.”
“가평군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34년 공직자의 마지막 인사
인터뷰의 마지막, 그는 긴 호흡을 들이켰다.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저를 지켜봐 주신 군민들 덕분입니다. 가까이서, 멀리서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늘 건강하시고, 가평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소리 없이 묵묵했다. 민원 창구에서 주민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던 한 공무원의 34년은 화려한 경력보다, ‘배려’, ‘원칙’,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가평군청의 한 책상에서 조용히 메모지를 넘기던 그가 떠난 자리에는 여전히 주민의 민원을 적어 내려간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흔적들에서, 가평은 오늘도 누군가의 성실한 일상을 통해 지켜지고 있다.
BEST 뉴스
-
[단독]성폭행 고소 되레 ‘무고’ 판단…경찰,가평군의원 A씨 검찰 송치
과거 한 남성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던 가평군의회 A 의원이 이번에는 무고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믿을 만한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A 의원에 대한 무고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A 의원은 지난 2021년 B씨... -
예견된 이사장 공석, 왜 늑장 인선했나…‘특정 퇴직 서기관 맞춤형 인사’ 의혹
-취업제한은 2027년 6월까지…두 달 늦춘다고 제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 -가평군, 지연 사유·후보 접촉 여부·취업심사 진행 상황 투명하게 밝혀야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자리가 후임자 선임도 없이 공석으로 방치되면서 가평군의 늑장 인사를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전임... -
[단독]시설공단 이사장 공모에 불거진 ‘모계 8촌설’…가평 술렁
-지원자 9명,서 군수 선거캠프 선대본부장 출신도 포함 -친족관계만으로 내정 단정 못 해…“심사·추천 과정 투명하게 공개해야” 가평군청 외경.[드론/정연수 기자]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신임 이사장 공개모집을 둘러싸고 서태원 가평군수와 공모에 지원한 김구태 전 가평군 서기관이 모계 ... -
[집중취재/물 위에 세운 파크골프장①] 6개 읍·면에 160억…가평군은 왜 하천으로 몰렸나
본보는 가평군을 비롯한 경기북부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파크골프장 건설 실태를 점검하고, 하천부지 침수 위험과 반복 복구비, 환경 훼손 및 중복투자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3회에 걸쳐 연속 보도한다.-편집자 주- -대성리 기존 36홀 인근에 54홀 추가…청평 생활권에 총 90홀 -가평읍 달전리에도 2... -
[현장 르포] ‘경자유전’ 칼바람에 얼어붙은 농촌 부동산…가평 개발경제가 멈췄다
-설악면 외지인 소유 농지 ‘반값 매물’까지 등장했지만 거래 절벽 -중장비·주유소·철물점·식당으로 불황 확산…경기북부 농촌경제 ‘도미노 위기’ 경기 가평군 설악면의 농지. 이 땅은 서울에 거주하는 최 모씨가 세컨하우스를 짓기 위해 3년 전 매입했다. 그런데 농지 전수 조사가 시작되면서 매... -
"측근일수록 권력에서 한 걸음 더 물러서야 한다"
권력의 곁에는 언제나 ‘측근’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선거철 후보자의 옷깃만 스쳐도 측근을 자처하고, 유세장을 따라다닌 인연은 어느새 ‘성골’과 ‘진골’을 가르는 훈장처럼 포장된다. 선거가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논공행상’이라는 낡고 불편한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26일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신임 이사장 공개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