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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36년 6개월, 나는 늘 ‘나’가 아니라 ‘우리’였다”

  • 정연수 기자
  • 입력 2025.11.25 18:45
  • 조회수 4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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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평군청 박재근 경제산업국장, 정년 앞두고 밝힌 공직 인생의 마지막 소회

“퇴임을 앞두니… 설렘보다 떨림이 더 큽니다.

36년 전 처음 공직에 들어올 때와는 또 다른 떨림이죠.그래도… 제 삶의 2막을 잘 시작할 수 있겠죠.”

박재근2.JPG

가평군 경제산업국 박재근 국장은 올해 말, 36년 6개월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한다.조종면 현리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모두 가평에서 다닌 그는, 말 그대로 “평생을 가평에서 살고 가평만을 위해 일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공직… 어느새 내 인생이 되다”

 

1989년 6월, 그의 인생을 바꾼 말은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나가서 직장생활할 게 아니면 공무원 해보는 게 좋지 않겠니?”별다른 계획도, 준비된 길도 없었지만 그는 집에서 독학으로 공부했고 단번에 합격했다.

 

첫 부임지는 ‘하면사무소’(현 조종면). 9급 서기보로 시작해 8급, 7급, 6급, 5급을 거쳐 결국 서기관까지 올랐다. “관운이 좋았죠. 부족한 만큼 더 배우고 더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안 해본 업무가 없었다… 그래도 가장 남는 건 ‘우리’라는 마음”

 

36년 동안 그는 민원·복지·의회·기획·자치행정 등 행정의 거의 모든 분야를 경험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외서면→청평면, 하면→조종면의 명칭 변경 ▲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 공모 선정(100억 원 확보) ▲2024년 ‘접경지역 지정’ 실현이다.

 

하지만 그는 공적보다 사람들을 먼저 떠올렸다.“성과가 생기면 ‘내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늘 ‘우리가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눠 갖는 게 맞죠.”

 

상 하나가 생기면 “네가 더 고생했으니 네가 받아라”라고 먼저 말하던 그. 그는 자신을 ‘허허실실한 사람’이라 하지 않았지만, 동료·선후배 사이에서 “호불호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음악역 1939… “잘됐으면 전국의 젊은이들이 가평으로 올 수 있었는데”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정책도 있다. 바로 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 그는 당시 실무팀장으로 공모사업을 주도하며 “가평이 젊은 빈털터리 아티스트들의 꿈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했다.

 

“거기서 연습하면 대스타가 되는구나! 이런 문화적 상징이 되길 바랐죠. 조금 변형되면서 아쉬움이 큽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가능성을 믿는다.젊은 아티스트들의 유입, 청년문화 중심지로의 재도약은 “지금부터 다시 고민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재해로 인한 군민의 사망… 평생 마음에 남을 겁니다”

 

36년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일했다는 그도, 말문이 멈춘 순간이 있다. “금년 7월 수해 때… 군민이 사망했을 때입니다. 재해로 인한 사망은… 없어야 하는데…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던 그의 눈빛에는 공직자의 무거운 책임감이 서려 있었다.

 

“가평의 미래… 관광만으론 안 됩니다. 청년이 살아야 합니다”

 

그는 가평군의 미래에 대해 단호하게 말했다. “관광만으로 지역이 유지되지 않습니다.청년이 정착해야 지역이 삽니다. 공무원들은 어떤 정책이든 ‘관광+정착’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그는 특히 군유지·유휴부지를 활용한 ▲청년농부 육성 ▲청년창업 공간 조성 ▲산림관광·음악관광과의 연결 등을 강조했다. “산림도 농업도 문화도… 결국 관광과 연결돼야 청년들이 가평에서 살 이유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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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앞둔 국장의 솔직한 마음… “두려움이 있다”

 

박 국장은 “정년연장이 돼도 더 하고 싶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 딱 적기입니다.

퇴직 후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큽니다. 하지만 그 떨림을 이기는 것이 제2의 인생이겠죠.”

그는 집에서 운영 중인 작은 카페를 다시 정비해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내에게… “30년간 고맙고, 사랑합니다”

 

박 국장은 인터뷰 중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직이 바쁘단 핑계로… 아이들을 제대로 못 돌봤어요. 그래도 잘 커준 아이들, 그리고…30년 동안 제 옆을 지켜준 아내에게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군민 여러분, ‘함께’ 해주십시오”

 

그는 공직자로서 마지막으로 군민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잠시 말했다가 지우고,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했다. “군민들께서 개별적 요구보다 ‘함께하는 힘’을 보여주신다면 가평은 훨씬 더 빠르고 더 멀리 갈 수 있을 겁니다.”

 

36년 6개월의 공직 인생. 그의 말은 화려한 업적이 아닌, 아주 단순한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내가 아니라… 늘 우리였습니다.” 퇴임을 앞둔 박재근 국장의 조용한 고백은, 오늘도 가평군 행정의 한 페이지를 따뜻하게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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