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가 지난 4일 가평군농협에 보낸 '수해 피해 가정 꾸러미' 470개 중 일부가 창고에 쌓여있다. 가평군 농협 관계자는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라고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서류 등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470박스.농협중앙회가 가평군농협에 내려보낸 이재민 구호 꾸러미의 숫자다. 쌀국수, 곰탕, 라면이 들어있는 박스. 본래는 수해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한 국민 성금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이 물품들은 피해 농가가 아닌 조합장 주변의 ‘우호 인사들’에게 흘러들었다. 조합장이 트럭에 싣고 다니며 직접 배포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이재민의 눈물이, 조합장의 선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구호가 아니라 ‘재량품’
공문도 없고, 명단도 없다. 중앙회는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라”고 전화 한 통으로 지시했고, 단위농협은 이를 조합장의 ‘선심용 물자’처럼 사용했다. 공문 없는 지원, 기준 없는 배분, 기록 없는 회계. 그 사이에서 1,500만원 상당의 구호품이 사라졌다. 농협중앙회와 가평군농협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침묵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공공자산을 사적으로 사용한 ‘도덕적 타락’이다.
선거 앞둔 조합장의 ‘온정 행정’
2026년 3월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건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구호품을 임원과 이사, 친분 있는 조합원들에게만 배포했다는 제보는 단순한 친절이 아닌, ‘표 관리’의 일환으로 의심된다.
공직자 출신 조합장이 ‘표를 얻기 위한 온정’을 가장해 공공 물품을 사적으로 활용했다면, 이는 명백한 사전선거 행위이며 농협법과 공직선거법 모두의 정신을 정면으로 훼손한 일이다. 구호물품은 표밭을 다지는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로 모인 공공의 손길이다.
‘농협의 본질이 흔들린다’
농협은 본래 농민의 상생을 위한 협동조합이다. 그러나 최근 단위농협 곳곳에서 벌어지는 ‘조합장 왕국화’는 이 조직의 본질을 무너뜨리고 있다. 조합장은 농민의 대표가 아니라, 때로는 권력자처럼 군림한다.
▲장동규 조합장이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꾸러미',해당 물품을 받은 사람은 농협 임원으로 밝혀져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는 농협 측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다.[사진/정연수 기자]
감사의 손길은 느슨하고, 중앙회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이다. 공공자금을 사적 영향력 강화에 쓰는 문화가 구조적으로 용인되는 것이다. ‘조합원의 돈’, ‘농민의 성금’이 ‘조합장의 재량’으로 둔갑하는 현실은 농협의 도덕적 파산을 의미한다.
‘공직자 출신 조합장의 책임’
장동규 조합장은 공직자 출신이다. 행정의 절차와 법의 취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로 들었다”, “알아서 나눠줬다”는 식의 해명은 무책임 그 자체다. 공문 없는 지시를 그대로 실행하고, 기록도 남기지 않은 행태는 ‘농협 운영의 사유화’를 방증한다.
공적 권한을 사적 신뢰망과 맞바꾸는 순간, 그 조직은 더 이상 협동조합이 아니다. 작은 권력이라도, 그것이 국민의 신뢰 위에 세워졌다면 결코 ‘사유 재산’처럼 다뤄져선 안 된다.
‘농협중앙회, 침묵 말고 책임을’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중앙회의 무책임에 있다. 구호품은 농협 명의로 내려왔고, 예산은 국민의 성금에서 비롯됐다. 그런데도 중앙회는 ‘공문 하나 없이’, ‘관리대장 하나 없이’ 물품을 흘려보냈다. 중앙이 규정을 무너뜨리면, 지방은 통제되지 않는다.
중앙회는 즉각 감사에 착수하고, 전국 단위로 구호물품 관리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그 첫 번째 사례가 가평이 되어야 한다.
‘구호의 이름으로 사익을 취한 자들’
이재민의 눈물 위에 쌓인 꾸러미 상자들이 ‘표심용 선물박스’로 변질되는 순간, 그 사회는 이미 정의를 잃었다. 농협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다. 농촌 공동체의 신뢰를 지탱하는 마지막 울타리다.
그 울타리 안에서 구호품이 사라지고, 선거가 움직인다면,그것은 개인의 부패가 아니라 제도의 붕괴다. 이제, 농협은 국민 앞에 답해야 한다. 470박스의 ‘선심’이 아니라, 1명의 농민을 위한 진정한 협동의 가치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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