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GN뉴스=경기도]구조적 폭력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과도 같다.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거나 지나치기 쉬운 사회 구조가 사실은 특정 집단의 삶을 제한하고, 억압과 차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레이스 조 교수가 지적하듯이, 미군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겪어온 고통은 단순히 개별적인 불행이나 불운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그들의 삶을 사방에서 옥죄는 구조적 폭력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그런 고통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준다.
▣보이지 않는 폭력의 작동 방식
구조적 폭력은 눈에 보이는 칼이나 총처럼 직접적인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폭력의 잔해는 특정 집단에게 끊임없는 희생과 고통을 요구한다. 기지촌 여성들이 겪어온 폭력과 차별은 그 사회적 시스템의 산물로, 여기에 개인의 잘못이나 실수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억압은 그들의 선택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전쟁 이후 형성된 사회적·경제적 구조 속에서 이미 ‘예정된’ 고통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경제적 자립의 여지가 부족했던 여성들은 기지촌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미군을 상대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그들의 희생을 가능하게 했던 건 국가와 지역 사회의 공모, 그리고 차별과 멸시를 고착화한 시스템이었다. 사회는 그들에게 낙인을 찍었고, 그들이 갈 수 있는 공간과 선택을 제한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역사의 현장에 담긴 의미를 다시 읽어야 할 책임이 있다.
▣ ‘기억’이 부르는 진정한 치유
그레이스 조 교수가 말하는 ‘구조적 폭력’의 본질은, 이러한 억압의 구조가 사라지지 않고 반복된다는 데 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로 남겨질 수 없다. 그들 개개인이 겪은 고통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그 폭력의 체계를 바로잡을 가능성은 없다.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같은 구조 속에서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낼 것이고, 똑같은 폭력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기지촌 여성들이 겪은 아픔과 희생을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처했던 구조적 폭력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음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 그 기억을 통해 우리가 성찰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기억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누구도 기지촌 여성들과 같은 낙인과 고통을 겪지 않도록 사회적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 성찰과 변화, 그 출발점에 서서
구조적 폭력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끈질긴 벽이다. 그렇기에 시민 사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위치에서 이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구조적 폭력의 잔재를 마주하고 있으며, 그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약자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기지촌의 낡은 건물들은 단순히 옛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의 역사적 상징이며, 그곳에 남겨진 기억은 단단히 박혀 있다. 그 건물과 공간을 바라볼 때, 우리는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되짚어야 한다. 과거의 고통을 현재의 우리 삶에서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더 깊이 성찰하고 함께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
삶의 저편에서 여전히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을 멈추기 위한 첫걸음은, 그 폭력의 존재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