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성병관리소에서 역사의 상처를 만나다
아픈 기억의 현장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메시지를 전하다
[NGN뉴스=동두천]초겨울의 냉기가 도는 2024년 11월 13일 저녁, 경기 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 앞에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불빛들이 모였다. 그 속에 검은 코트를 입은 그레이스 M. 조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 상선 선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의 삶을 바탕으로 여성 인권 문제와 국가 폭력의 역사를 폭로한 '전쟁같은 맛'의 저자이다. 미국 뉴욕시립대 사회학 교수인 그녀는, 이번 방문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굳게 다지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레이스 조, 동두천에서 '전쟁 같은 맛'의 진실을 이야기하다
조의 에세이 '전쟁 같은 맛'은 미국에서 이미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레이스 조의 작품은 한국전쟁 후 미군이 가난한 한국인들에게 보급하던 탈지분유를 '전쟁 같은 맛'으로 표현하며, 기지촌 여성으로 살아간 어머니의 삶을 침착하고 진실되게 담아냈다. 작가는 어머니의 처절한 삶과 함께 기지촌에서 겪었던 아픔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 책에서 그녀는 어머니가 '군자'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살아가며 일제의 식민시대부터 경험한 처절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렸다. 그 시절 미군이 제공하던 탈지분유를 군자의 시선으로 서술하며, 절망 속에서도 생계를 이어갔던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조용히 끌어냈다. 조는 기지촌의 여성들이 겪은 고난과 사랑을 통해, 어머니와의 깊은 유대와 사랑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조는 천막 안에서 시민들에게 “이곳에 오면 어머니와 같은 분들의 이야기를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기지촌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고, 많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 진실을 마주하면서 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레이스 조는 뉴욕 시립 스태튼아일랜드 대학에서 사회학과 인류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브라운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뉴욕시립대학에서 사회학과 여성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녀의 대표작 '전쟁 같은 맛'은 202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2022년 아시아·태평양 미국인 도서상을 수상했다.
이날 밤, 한국을 방문한 그녀는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찾았다.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이야기를 직접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온 그녀는 현장에 서서 “제 어머니는 군자로서 기지촌에서 극복해야 했던 많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 진실을 마주하면서 저는 어머니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사랑의 깊이가 더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었다. 그레이스 조는 성병관리소 앞에서 기지촌 여성들의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였다. 그녀는 “기지촌에서의 삶은 한국 사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책과 강연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 “이곳의 아픔을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이제는 기록해야 할 때”
성병관리소 앞에 마련된 천막 안에서 그레이스 교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는 단지 낡은 건물이 아닙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억압받고 고통받은 역사적 현장입니다.” 그녀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고통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이 장소가 지닌 의미를 지우려는 움직임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그녀는 이를 '구조적 폭력'이라고 명명했다. 시민들은 고요히 숨죽인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어와 한국어 간의 통역 과정은 쉽지 않았다. 통역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말하면서 동시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발언을 하려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이로 인해 처음에는 서로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느낌이 감돌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여학생들이 중간 통역을 맡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은 그레이스와 시민들 간의 대화를 도란도란 소곤소곤 정확하게 전달해 주었고, 덕분에 분위기가 점차 부드러워졌다. 중간중간 웃음이 터지면서 현장 분위기는 한층 밝아지고 따뜻해졌다.
이어 그녀는 성병관리소에서 겪었던 여성들의 고통이 단순한 개인의 상처가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 속에서 강요된 아픔임을 이야기했다. “이곳은 개인의 삶을 넘어, 국가와 권력의 손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녀의 말에 이곳에 모인 시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눈빛을 보냈다.
그날 밤, 그레이스 조와 함께 있었던 성병관리소 철거저지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그녀의 방문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는 “그레이스 조 교수님이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알리는 데 앞장서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미국대사관에도 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편지를 써주신다고 약속까지 해주셨어요. 또한 미국에 돌아가서도 언론사에 동두천의 실정을 기고해주신다고 했어요. 동두천 주민들을 물론 미국인에게도 이곳의 역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라며 소회를 전했다. 이어 “이번 방문이 계기가 되어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레이스 조의 이야기를 지켜보던 동두천 시민 A씨는 “이곳에서 이런 일이 다시 회자되는 게 정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기지촌 여성들의 아픔이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도 젊은 시절부터 보산동 주변을 자주 오가며 그곳을 목격해 온 한 사람으로,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며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
조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성병관리소를 뒤로하고 돌아서면서도 한참 동안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지촌에서의 삶은 한국 사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라고 말하며, 기지촌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의정부 '빼뻘'에서 25분의 기지촌 할머니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두레방 친구들도 감사를 전했다. 자신을 2004년생이라고 밝힌 젊은, 아니 아직은 어린 여학생도 참석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질 기억의 희석을 우려했다.
그레이스 조는 이번 이야기를 통해 기지촌 여성들이 여전히 기억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책과 강연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라고 있다. 그녀의 방문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동두천과 기지촌 여성들이 함께 겪어온 아픔을 새롭게 조명하고, 한국 사회의 상처를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레이스 교수의 방문을 맞이한 경기북부 평화시민운동 관계자 역시 깊은 감사와 기대감을 표했다. 그는 “그레이스 교수의 방문이 국내외에 이 장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리고, 철거 계획에 대한 재고를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녀의 관심과 지지가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 “나의 어머니와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주세요”
이날 그레이스 교수는 이곳에 앉아서, 어머니와 기지촌에서 살아온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녀는 이들이 국가의 방관 속에서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살아야 했던 현실을 강조하며, 이제는 그 고통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현장에 모인 40대 여성 B씨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1970년대는 한국 산업화의 시기였다. 또한 베트남전 참전, 중동 건설붐에 참가, 한국 산업화의 시기였고,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 시대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기지촌에서 성 산업에 종사했던 기지촌 여성들은 외화벌이의 역군이었지만, 오히려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이를 숨겨왔다. 그레이스 교수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그레이스 교수가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준 것에 깊이 감사했다.
그레이스 교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가볍게 손을 맞잡으며, “당신들의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이곳을 지키고 역사를 남길 수 있도록 제가 힘을 보태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방문은 동두천과 기지촌 여성들의 아픔을 다시금 조명하며, 그들의 고난과 회복을 향한 소중한 기억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 주민들 또한 작가의 방문을 통해 기지촌 여성들의 삶이 과거의 이야기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녀는 “기지촌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역사로 남아야 합니다”라며 간절한 소망을 남겼다.
그레이스 조의 이번 방문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새기며, 현재와 미래의 동두천과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와 깊은 통찰은 현장에 모인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 해외 학자들과의 연대 속 다크 투어리즘의 상징으로 자리 잡다
그레이스 교수의 방문에 앞서 사우스다코다대 징 윌리암스 교수, 애리조나주립대 김수진 교수,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토드 헨리 교수 등 여러 해외 학자들이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방문해 이곳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레이스 교수 또한 “이 장소가 단순히 과거의 폐허가 아닌,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이번 방문이 자신에게도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음을 고백했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야기 속에서만 느꼈던 어머니의 고통이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성병관리소는 그녀와 같은 이들에게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전쟁과 권력의 어두운 흔적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 시민들과 함께 나눈 희망의 메시지
마지막으로 그레이스 교수는 이곳을 방문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여러분의 목소리가 이 역사를 기억하게 만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기록해야 할 때”라는 그녀의 진심 어린 메시지에 시민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결속을 다졌다.
한 시민은 “이곳이 철거된다면 우리의 역사가 잊히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해 보존 운동을 이어가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동두천의 시민들은 이날도 천막 안에서 인권운동의 오래된 슬로건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용기는 용기를 낳았다. ‘침묵은 죽음이고, 행동만이 삶이다.’(Silence Is Death, Action Is Life) 더 이상 행복은 무지개 너머에 있지 않다. 바로 여기가 무지개 너머의 섬이다.
이날 그레이스 M. 조 교수의 방문은 동두천 성병관리소에 남아 있는 이들의 고통을 재조명하며, 이 땅의 역사적 상처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한 걸음으로 기억될 것이다.
본보는 이날 있었던 그레이스 M. 조 교수와 시민들과의 2시간 가량 이어진 중요 대화 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획 시리즈로 편집해 연재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