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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소주’ 마침내 애국자 되다

정크아트로 파라다이스 만들고 있는 30년 외길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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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N뉴스 김희경 기자 | 기사입력 : 2019.09.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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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이 만난사람[7] - 박문욱 시계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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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이 만난사람(7)=NGN뉴스]  우리인간은 행복해 지기 위해 산다고 한다. 열심히 일 하는 것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행복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의 가치는 무게와 가격의 환산이 가능할까? 행복의 가치는 자신의 주관에서 나오는 내면적인 문제이기에 일반적으로 환산이 어렵다. 

 

오늘 대학시절 부산에서 유명했던 “문제학생”이었던 박문욱 시계박물관 관장을 만났다.

 

절대행복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간파하며 사회가 만들어준 형식적인 행복의 프레임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자신만의 행복의 조건을 하나 하나 채워나가고 있다. 

 

지금은 가평군 수리재에 자신만의 멋들어진 유토피아를 만들고 있다.

 

그러면 부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문제학생’이었던 그가 어떻게 자신의 자전적인 생생한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일까? 

 

그는 동아대학교 건축과와 ROTC(대학에서 2년간 군사교육을 받으면 장교로 임용 됨)를 나왔다. 당시 동아대학 학생들은 물론 부산시민들도 거의 모두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그는 사회가 설계해 놓은 프레임에 염증을 느껴 학교 통학할 때와 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항상 소주 4병을 마셨다고 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말술이어서 그런지 저 역시 자연적으로 말술이 되었어요. 등교 전에 쐬주 2병을 까고 학교에 가면 ROTC 선배들한테 엄청 많이 맞았어요. 그래도 그 술 버릇을 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문제아 대학생이었던 박문욱 관장은 공병장교로 입대하면서 자신의 정상적이지 않은 생활을 180도 바꾸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장병들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절대 용서 할 수 없다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내 병사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의 문제아 적인 행동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절제를 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해 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 욕망을 억제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떠 오르는군요,”

 

'문제아 학생' 공병장교로 군에 입대해 살을 깍는 살신성인으로 새롭게 태어나

 

공병장교를 하면서 건설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건설업무를 하다보니 용접은 기본으로 다 익혔다. 철을 때우는 일반 용접과 알루미늄을 때우는 아르곤 용접도 벌써부터 배웠다.  

 

남들은 요즘도 군대 안 가려고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있지만, 절대긍정의 마음만 있다면 군대에서의 경험은 실제적으로 사회에 나와서 무척 많은 도움을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군대생활을 통해 확 달라진 아들 모습을 본 부모님도 너무 기뻐 눈시울을 적실 정도였다.

 

‘개과천선’이란 이런 경우를 말하지 않을까? 당시 부산에서는 박관장이 앞으로 제대로 잘 될 것이라고 예견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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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문제학생' 포스코 임원으로 영전(?) 

 

그러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난 박관장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제대하기 전에 취업을 위한 실전경험을 모두 마스트하고 제대를 해서 어렵지 않게 삼환기업에 입사했다.  

 

삼환기업에서 심도있는 경험을 쌓은 뒤 곧바로 대기업인 포스코에 입사했다. 이때부터 박관장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사회에 나오기 전에 군에서 모든 실무와 정신적인 무장을 확실히 했기에 포스코에서도 잘 나갔다. 

 

당당하게 포스코에 입사한 뒤 유럽과 중동 그리고 예멘 등 전 세계를 누비며 특유의 마도로스 기질로 열심히 일했다. 당연히 능력을 인정받아 포스코 임원이 되었다.   

 

“문제학생”이 포스코 임원으로 영전(?)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통학소주”의 문제학생이었지만 그 시절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만의 강한 의지가 묻어났다. 

 

그는 중학교 때 대한민국은 진공관 박물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해외에 파견나가 있을 때 진공관이 들어있는 시계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족의 도움도 무척 힘이 되었다. 아들은 말을 수집했고 딸은 램프 그리고 와이프는 유제품과 목기류 박관장은 시계를 수집하는 환상적인 콜라보를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수집한 전 세계의 시계 중에는 남북전쟁 때의 시계도 있다. 희소성의 가치로 보면 금전적인 가치가 있을 법 한데 돈 문제는 얘기 하지 않는다. 

 

돈 문제로 들어가면 자신이 꿈을 향한 목표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에둘러 프로 소장가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은퇴를 하고 수리재로 귀촌해 정크아트(산업폐기물을 이용한 예술) 에 몰입

 

박관장은 은퇴를 하면 시골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열망으로 포스코에 근무하면서 현재의 수리재에 2600평의 땅을 사 놓고 자리를 잡았다. 

 

집 뒤에는 산이 있고 집 앞에는 물이 흐르고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이었다. 처음에는 마을 텃세가 심했다. 남들은 일하고 있는데 외지에서 사람이 들어와 시끄럽게 할 것 같은 생각에서 그랬을 것 같다고 박관장은 말한다.

 

그렇게 몇 년을 꾸준히 아침 일찍 일어나 음악을 틀어놓고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수집품들은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30년동안 해 온 정크아트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박관장의 정크아트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에서 한두 명씩 찾아와 정크아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마을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집안에 당구대, 노래방 시설을 설치해 마을사람들에게 언제나 오픈되어 있다. 

 

최근 박관장은 마을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도로를 따라 세워 놓으면 마을의 이미지가 높아질 것이며 외지에서도 관광객이 놀러와 마을 경제도 살아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관장은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마을사람들은 먹을거리를 제공하면 지역특산품 판매로 이어져 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관장은 그 계획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10여개의 고물상을 찾아 작품에 쓸 재료를 찾는다. 이제는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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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산업쓰레기라고 돈을 주며 버리는 데 자신은 그것을 모아 정크아트 작품으로 승화시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으니 저는 ‘애국자’ 아닌가요? 하하하” 

 

호탕하게 애국자임을 강조한 그는 산업화가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기계화의 힘을 빌리는데 정크아트는 오롯이 손으로만 만들어 가기에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그의 정원에는 지금까지 만들어온 수많은 정크아트 작품들이 있다. 또한 정크아트 공방에는 생활전반에서 나오는 수많은 산업쓰레기가 새 생명을 부여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그들이 박관장의 정크아트 기술을 통해 새 생명을 부여 받을 때 태산이 진동할 듯한 깊은 감동이 있으리라.

 

박관장은 이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앞으로 생을 마감하는 날 까지 정크아트의 작품을 만들어 눈길 하나 받지 못하던 천덕꾸러기 산업폐기물이 최고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순간의 환희를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 때 좌절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좌절을 어떻게 이겨내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박관장, ‘문제학생’이라는 불명예를 당당하게 극복하고 앞으로 지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파라다이스를 만들어 가고 있는 그의 인생 2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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