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의 편지]
존경하는 국민의 힘, 김태규 국회의원님께 판사로, 공직자로, 이제 국회의원으로 형사 사법의 무게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겪고 계신 의원님께 한 장의 편지를 올립니다.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일선에서 밤새 조서를 쓰고 있는 경찰관들과 그 경찰을 기다리는 국민의 마음으로 썼습니다.
의원님께서 법사위에서 조문 검토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처리방식을 비판하시고, 언젠가 검찰 수사권의 온전한 복원을 위한 법안을 내시겠다고 밝힌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소신의 바탕이 권한만 옮기면 정의가 선다는 착각을 경계하는 법조인의 경험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욱 간곡히 호소합니다. 지금 경찰은 수사권을 받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는 10월 2일부터 검사의 직접 수사와 보완수사까지 사실상 경찰이 떠안는 구조가 됩니다.
권한의 이름만 보면 경찰이 더 커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현장은 정 반대입니다. 수사관 한 사람이 맡는 사건이 이미 100건을 훌쩍 넘었습니다. 어떤 팀에서는 30에서 60건을 동시에 끌어 안고 있습니다. 경찰에서 넘어올 장기 미제사건 보완수사 요구의 폭증까지 겹치면 일선은 수사 쓰나미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경찰청이 기동대 의 정원을 줄여 수백명을 수사 부서로 돌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증원이 아니라 다른 치안의 공백을 만드는 재배치 입니다. 지구대와 파출소의 사람을 빼서 수사팀을 메우는 방식으로는 민생치안과 수사품질 이 동시에 무너집니다.
인력, 예산 교육, 디지털 포렌식 법률 지원이 받쳐주지 않는 권한 이관은 경찰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떠 맡기는 것입니다. 권한을 받아도 조직 안 에서는 이미 반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사경과를 스스로 반납하는 경찰관이 다시 늘고 있습니다. 수사부서를 떠나는 이들도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이유가 거창하지 않습니다. 사건은 쌓이는데 돌아오는 것은 야근뿐이라는 한 경위의 말이 전부입니다.
가족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 근무. 민원과 감사와 기한의 압박. 실적은 늘어도 처우는 제자리인 구조. 이런 곳에서 누가 자부심을 가지고 어려운 사건을 붙잡겠습니까? 더 아픈 것은 일선 수사관들 가운데서도 보안 수사권이 완전히 사라지면 송치한 사건이 다시 돌아와 일을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권한을 더 달라는 구호 와 현장에서 실제로 느끼는 공포는 다릅니다. 권한만 키우고 사람을 지키지 않으면 유능한 수사관은 빠져나가고 남은 인력은 소진됩니다. 그때 피해를 보는 것은 조직이 아니라 국민입니다.
처우 와 환경이 이 지경인데 공용경찰 운운하는 것은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최근 제주 실종 허위종결 등 잇따른 사건은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깊게 흔들었습니다. 잘못은 엄히 물어 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빌미로 경찰은 어차피 안 되니 권한만 주고 통제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기강이 해이한 조직에 권한만 얹으면 남용이 생기고 지친 조직에 사건만 던지면 부실이 생깁니다. 둘 다 국민을 해칩니다. 경찰을 사랑한다는 것은 제복 의 권위를 무조건 옹호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사람, 시간, 예산, 교육을 주고 잘못하면 엄히 묻되 잘하면 보상하는 정상적인 조직을 만드는 일입니다. 중수청에는 수당과 관사와 유인책이 논의되는데, 일선 경찰서 수사팀의 야근과 이탈에는 여전히 재배치 로 대답하는 현실이 정상입니까?
의원님께 부탁드립니다. 첫째, 경찰의 수사 전권을 떠넘기는 속도보다 인력, 순증, 수사전문성 교육, 수사활동비, 특별 승진 등 실질 처우. 사건 격차를 줄이는 제도를 먼저 설계해 주십시오. 권한보다는 역량이 앞서야 합니다.
둘째, 일선이 감당할 수 없는 구조라면 견제와 보완의 장치를 성급히 없애지 않는 길을 열어주십시오. 경찰을 옥죄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찰이 사건 폭탄에 짓눌려 스스로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경찰 비위를 덮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위는 단호히 밝히되 14만 경찰 전체를 실패의 조직으로 낙인찍고 권한만 키우는 입법은 막아 주십시오.
조직이 살아야 국민이 삽니다. 의원님은 이미 ‘조문을 검토할 시간이라도 달라'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셨습니다. 그 자세로 이번에도 여의도 구호가 아니라 일선 조사실의 불을 봐 주십시오.
권한을 더 주는 법이 아니라 경찰이 사람답게 일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주십시오. 경찰을 사랑해 주십시오. 제복을 사랑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복을 입고 오늘 밤도 현장을 지키는 사람을 사랑해 주십시오. 그것이 결국 국민을 지키는 길입니다.
김태규님의 양식과 용기를 믿습니다. 부디 경찰 조직에 이로운 법안에 힘을 모아 주십시오. 국민의 한사람인 경찰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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