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움직였고,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있었다."
13일 오후 6시.초여름 햇살이 올림픽공원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경찰 비공식 추산 4천여 명의 시민들이 핸드볼경기장 주변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모습은 일반적인 집회와는 조금 달랐다.

게이트 앞을 지키던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로 옮겨가 돗자리를 펼쳤고, 일부는 건물 아래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가로수 하나 없는 출입구는 텅 비어 있는 곳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흩어진 것이 아니라 잠시 더위를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료 음료와 간식, 얼음물을 나눠주는 곳에는 긴 줄이 만들어졌고 남녀로 구분된 냉방 쉼터 버스 4대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민들은 단순히 구호만 외치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공명선거실천연대가 '사전투표 폐지·당일투표 수개표 3000만 대국민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오후 7시 기준 약 30만 명이 서명했다는 안내판 앞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집회 초반 "재선거"를 외치던 구호는 이제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한미공조 국제수사" 등으로 더욱 구체화되어 있었다. 올림픽공원 곳곳은 작은 전시장 같았다. 스케치북에는 저마다의 생각이 적혀 있었고, 그것들은 도로 바닥에 테이프로 붙여져 하나의 거대한 방명록이 되어갔다.

"민주주의는 사망했다." 커다란 현수막 아래에는 태극기가 펄럭였고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도 함께 걸려 있었다. 그 옆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색연필로 태극기를 그리고, "재선거"라고 적힌 손팻말을 만들고 있었다. 누구도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았고, 누구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과 함께 나온 평범한 주말 풍경처럼 보였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자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하나 되어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이어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을 떠올리게 하는 "대한민국" 함성이 올림픽공원을 가득 메웠다. 밤 12시가 가까워졌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계속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오른쪽으로 가세요." "멈추시면 안 됩니다. 계속 걸어가시면 됩니다." "태극기도 하나 가져가세요." "물도 가져가세요." 확성기 없이도 누군가는 안내했고, 누군가는 생수를 건넸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주웠다.
기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 많은 태극기와 생수, 음료와 간식은 누가 준비한 것일까.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묻지 않았다. 재선거를 열망하며 모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애국심과 자발적인 후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장은 마치 잘 짜인 분업 시스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자신의 역할을 찾아 움직였고, 수많은 인파가 오갔음에도 바닥에는 쓰레기 하나 찾기 어려웠다. 그 질서는 오히려 거대한 함성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부산에서 밤새 올라왔습니다" 부산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는 29세 회사원 김모 씨는 땀으로 젖은 태극기를 손에 쥔 채 말했다. "회사 끝나고 밤 버스를 탔습니다. 누가 시켜서 온 게 아닙니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 여기 왔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출근해야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농사짓다 말고 올라왔어요" 충남 예산에서 왔다는 60대 박모 씨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평생 이런 집회는 처음입니다. 농사도 중요하지만 나라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하나쯤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모인 걸 보니 힘이 납니다."
"우리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전북 전주에서 초등학생 딸과 함께 올라온 40대 이모 씨는 아이가 직접 만든 태극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가 왜 서울에 왔냐고 묻길래 민주주의를 지키러 간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오늘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차분해졌다. 함성은 있었지만 혼란은 없었고, 열정은 있었지만 무질서는 없었다. 수많은 시민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와 주장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모여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밤늦도록 자리를 지키는 시민들의 모습은 올림픽공원의 여름밤을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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