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베트남에서 날아온 비보는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아직 하실 일이 많다"는 후배들의 간절한 기원도, 현지로 급파된 의료진의 노력도 운명을 되돌리지 못했다. 향년 74세.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공무(公務)의 현장을 지키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타국에서 영면했다.
우리는 오늘 단순히 한 명의 원로 정치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부터 2026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물줄기를 바꿔놓았던 '거목(巨木)'을 잃었다.
◇ 중앙의 킹메이커, 포천의 야성을 깨우다
포천 정가에서 이해찬을 논할 때 박윤국을 빼놓을 수 없다.
박윤국은 포천의 정치인이다. 1991년 군의원을 시작으로 군수와 시장을 거쳐, 현재 더불어민주당 포천·가평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포천의 일꾼'이다. 하지만 보수의 텃밭이었던 포천에서 그가 민주당의 깃발을 꽂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해찬이라는 중앙 전략가의 안목이 있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포천은 여전히 민주당에게 험지였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박윤국이라는 인물이 가진 지역 내 신망과 경쟁력을 정확히 간파했다. "포천은 박윤국으로 간다." 이 전략적 결단은 적중했다. 박윤국은 2018년 포천시장 선거에서 52.07%라는 압도적 득표로 당선되며 포천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이는 지역 인물을 알아본 중앙의 혜안과, 그 신뢰에 부응한 지역 일꾼의 합작품이었다.
◇ '조직된 신뢰'가 만든 대권의 길
이해찬이 포천에 심은 씨앗은 단순히 지자체장 한 명을 배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훗날 이재명 정부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포천 지역의 표심 변화는 극적이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접경지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가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박윤국이 시장 재임 4년과 지역위원장 활동을 통해 바닥 민심을 끈질기게 다져온 덕분이었다. 이해찬은 생전 "선거는 바람이 아니라, 훈련된 조직과 축적된 신뢰로 치르는 것"이라 강조했다. 포천은 그 철학이 증명된 현장이었다.
◇ 2024년의 좌절, 그리고 끝나지 않은 역사
물론 시련도 있었다. 2024년 제22대 총선은 이해찬과 박윤국 모두에게 아픈 손가락으로 남았다.
당시 박윤국 후보는 포천시에서 51%를 득표하며 김용태 현 의원을 앞섰다. "20년 만의 민주당 국회의원 탄생"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가평에서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석패했다. 이 결과는 아무리 뛰어난 전략과 인물이라도, 지역 구도의 벽을 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이해찬은 생전 "역사는 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낙선은 끝이 아니었다. 박윤국은 2024년 말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며 행정과 경영의 영역으로 외연을 확장했고, 여전히 지역위원장으로서 와신상담하고 있다.
◇ '퍼블릭 마인드', 그가 남긴 유산
세간은 이해찬을 '무서운 승부사'로 기억한다. 하지만 포천이 기억해야 할 그의 모습은 다르다. 중앙 정치의 최정점에 있으면서도, 변방의 작은 도시가 가진 가능성을 소중히 여기고, 그곳의 투박한 일꾼을 국가의 자산으로 대우했던 '따뜻한 멘토'의 모습이다.
그가 평생 강조한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는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떠났지만, 그가 포천에 심어놓은 신뢰의 자산은 박윤국이라는 정치인을 통해,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들을 통해 계속 자라날 것이다.
2026년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이라는 새로운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이해찬이 믿었던 포천의 미래가 박윤국을 통해 온전히 실현될 때, 거목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닌 새로운 문장의 시작이 될 것이다.
치열했던 역사의 전장을 뒤로하고 영면에 든 이해찬 전 총리. 당신이 지역 정치에 심어준 자부심은 오래도록 포천의 등불로 남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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