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분 만에 수위 4m 상승, 제방·교량은 제 역할 못했다
7·20 가평 집중호우로 하천이 범람한 이유를 단순히 “비가 많이 왔다”로 설명한다면, 우리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게 된다. 이제는 ‘복구 행정’이 아니라 ‘유역 행정’으로 바꿔야 한다. 가평의 강이 다시 넘치기 전에, 제도의 둑부터 쌓아야 한다.-편집자 주-
▲7.20 호우로 범람했던 가평군 조종면 대보리 조종천...퇴적물이 8미터 이상 쌓여 있다.[사진/정연수 기자]
지난 7월 20일 새벽, 가평군 조종면과 북면 일대 하천이 무너졌다. 새벽 3시를 넘기며 시간당 76mm의 폭우가 쏟아졌고, 불과 한 시간 반 만에 조종천 수위가 4m 치솟았다.
하천을 따라 늘어선 마을과 도로, 계곡 상가가 순식간에 물속에 잠겼다. 이번 호우로 가평군에서만 7명이 숨지고 1,400여 명이 대피했다.전문가들은 “집중호우가 아니라 하천 설계와 관리의 실패가 피해를 키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순식간에 물벽이 밀려왔다”… 하천이 범람한 그날의 새벽
조종천 대보교 인근 주민들의 증언은 공포 그 자체였다. “3시 조금 넘으니까 물이 쏟아지듯 올라왔어요. 방송이 울릴 때는 이미 도로가 사라졌습니다.”
대보교를 중심으로 하천이 월류(越流)하며 급류가 마을 안길을 덮쳤다. 가평읍 승안천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승안교 난간이 휘어지고, 저지대 마을회관 등이 줄줄이 침수됐다.
연인산 도립공원 방향 용추계곡에서는 계곡물이 산사태 토사와 뒤엉켜 펜션과 식당을 덮쳤고, 주민들은 고립되어 헬기로 구조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군은 오전 5시를 기점으로 조종면·북면·가평읍 등지에 재난 문자를 발송했지만 이미 물이 마을을 삼킨 뒤였다.
▣ 소하천·교량, 구조적 병목이 ‘폭탄’
수해 현장 곳곳을 취재한 기자의 시각는 범람의 원인은 단순한 폭우가 아니었다. 통수능(通水能=하천이나 교량, 수로(排水관)가 홍수 시 일정한 유량을 막힘 없이 안전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함) 부족도 피해를 키웠다.

▲조종천 대보교 하천에 퇴적물이 하늘만 보일 정도로 쌓여있다.[사진/정연수 기자]
조종천·승안천(용추계곡)주요 교량(대보교·승안교 등)은 교각 간격이 좁고 퇴적물이 최대 7-8미터 높이까지 쌓였다. 하상(河床)이 높아져 있어 부유물이 걸리기 쉬운 구조였고, 범람으로 이어져 하천변 축산 농가 등을 덮쳤다.
여기에 폭우로 상류 산사태에서 흘러내린 토석류가 교각 하류에 걸리며 통수 단면이 급격히 줄었고, 결국 월류로 이어졌다.
소하천 정비의 사각지대였다. 군은 매년 하상정비사업을 실시해왔다고 설명하지만, 용추계곡과 북면 지류 상당수는 제방고가 낮거나 호안이 침식된 상태였다. 실제로 용추계곡 하류에서는 퇴적물로 제방 높이가 절반 가까이 낮아진 구간이 여럿 발견됐다.
상류 산사태의 연쇄효과였다. 북면·조종면 일대 70여 건의 산사태로 쏟아진 토석이 하류로 몰리며 물길을 막았고, 하천 수위가 순식간에 치솟았다. “1시간 20분 만에 수위가 4m 상승했다”는 공식 발표는 바로 이 연쇄 작용을 보여준다.
▣ 인명·재산피해 1,800억… “하천이 도시를 집어삼켰다”
가평군은 사건 발생 일주일 뒤 잠정 피해액을 346억 원으로 집계했지만, 8월 11일 정부가 발표한 최종 수치는 1,829억 원이었다. 인명피해만 가평에서 7명, 포천 1명을 포함해 총 8명이 숨졌다.
주택·상가 6,532동이 물에 잠겼고, 조종천 인근 항사 공공하수처리시설(일 5,000톤 처리)이 완전히 침수되며 공공 인프라 피해도 컸다.
군 관계자는 “예상보다 빠른 수위 상승에 대응이 어려웠다”고 설명했지만, 주민들은 “비가 많이 와도 이렇게 넘친 적은 처음”이라며 제방 관리와 교량 설계 문제를 지적했다.
▣ 반복되는 ‘하천 행정’의 경고무시
2019년 집중호우, 2020년 북면 토석류 사고, 2022년 조종천 월류까지, 가평은 매년 같은 지점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하지만 소하천 정비계획은 여전히 단기 응급공사 중심이다.
군은 이번에도 “특별재난지역 지정 후 복구에 총력”이라고 밝혔지만, ‘사후 복구보다 유역 관리·통수 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가평군의 제방과 교량은 30년 빈도 기준으로 설계된 곳이 많다”며 “기후변화로 시간당 80mm를 넘는 집중호우가 잦아진 이상 설계 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조종천 대보교 인근에서 퇴적물 제거를 하고 있다. 항구적 대책을 위해 "주요 하천에 쌓여 있는 퇴적물 정비 부터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사진/정연수 기자]
▣ “다시 호우가 오면 똑같이 당한다”
현재 가평군은 주요 하천에 차수벽과 펌프 설치, 제방 보강을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현장 곳곳엔 퇴적물과 훼손된 호안이 남아 있다.
조종면 대보리 주민 이 모(67) 씨는 말했다. “군청 사람들 와서 사진 찍고 갔어요. 지금도 비 오면 밤새 잠을 못 잡니다. 물이 또 넘치면, 이번엔 피할 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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