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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19] “이곳은 사라져서는 안 될 역사”... 동두천 성병관리소, 국제적 관심↑

  • 양상현 기자 기자
  • 입력 2024.12.30 13:05
  • 조회수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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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과 치유의 장소로 재조명되는 옛 성병관리소, 시민과 전문가의 목소리가 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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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동두천의 차가운 가을 바람이 부는 11월 초, 옛 성병관리소 앞에는 다시금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모여들었다. 철거 예정인 이곳을 두고, “여기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다”는 시민들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이 장소는 한때 국가의 강제 수용 정책 속에서 고통받던 여성들의 공간이었다. 이제는 철거를 피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새로운 역사의 무대가 되고 있다.

 

11월 13일, 이 현장에 뜻깊은 방문자가 찾아왔다. '전쟁같은 맛'의 저자이자 미국 뉴욕시립대 사회학 교수인 그레이스 M. 조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기지촌의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룬 책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녀의 방문 소식에 현장은 다시 활기를 띠고, 동두천 시민들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 “이 장소를 기억과 치유의 상징으로 남기고 싶다”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와 시민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이곳을 철거해버리는 것은 단순한 건물의 소멸이 아니라, 고통과 치유의 역사를 지우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공대위 관계자는 “그레이스 조 교수가 직접 이곳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그녀의 방문이 이곳의 역사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철거 반대 운동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이 건물이 사라진다면, 누가 그 고통의 역사를 기억할 것인가”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주민들은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아픔을 단순한 흘러간 사건이 아닌,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집단 기억으로 여긴다. 그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오늘의 일상은 다르지만 이들의 기억속에 여전히 옛 성병관리소의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국가의 거대한 힘을 목격한 힘겨운 기억”으로, 어떤 이에게는 “막 살지 못하게 하는 뭔가 가슴벅찬 기억”으로, 또다른 이에게는 “오늘의 운동을 밀어가는 힘”으로 새겨져 있다.

 

▣ 과거를 기억하는 시민들

 

한편, 보산동 거리에서 만난 80대 시민 A씨는 깊은 주름 사이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평생을 보냈다. 여기에는 많은 이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철거하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 회상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삶의 일부였다. 그 역시 성병관리소와 보산동 일대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이어지는 역사의 일부임을 간절히 호소했다.

 

거리에서 만난 또 다른 70대 시민 B씨는 자신의 기억 속에 담긴 역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보산동의 커피 자판기 앞 의자에 앉아,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회상하며 잊지 못할 장면들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이 거리에서 평생을 살았어. 우리 집은 클럽을 했지. 3층이 가족이 사는 집이었고, 이곳은 말이 끄는 마차가 다녔어. 짐도 사람도 그렇게 옮겼지.” 그의 눈빛은 과거의 향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보산동 거리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약국이 저기 있었고, 저기가 병원이었지. 저 클럽이 여기서 제일 오래된 건물이야”라며 과거의 풍경을 되새겼다. 그의 기억 속에는 동두천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아온 수많은 개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기억의 장소가 아니다. 기지촌 여성들의 아픔과 고난의 역사도 함께 얽혀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70대 여성 C씨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젊었을 때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도 많았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상처는 남아 있어요.” 그녀는 그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준 것에 깊이 감사했다.

 

 동두천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이야기

 

최희신 씨는 이날, 동두천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70, 80년대에 20만이 넘는 여성들이 미국으로 결혼 이민을 갔어요. 대부분 미군과의 결혼이었죠. 그들은 기지촌 여성에서 벗어나고, 끔찍한 멸시와 가난에서 탈출할 길이라고 여겼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들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온 동네에 혼자 한국인이었을 때,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결국, 그런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이어서 지금도 여전히 그 기억을 간직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떠났다가 힘들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분들이 많아요. 할머니의 외로운 삶을 사는 분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최희신 씨는 사회문제를 구조적 폭력으로 바라보며, 개인의 삶이 결국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병관리소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역사다. 최 씨는 “성병관리소에서 겪었던 개인의 삶도 모두 역사가 됩니다. 그 역사를 지켜서 더 빛나는 꽃이 되도록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의 말 속에서 동두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느껴졌다. “그게 동두천이 살 길입니다.”

 

그녀는 동두천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야기들을 통해, 지역 사회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녀는 “기지촌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냥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젊은 시절,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대한 꿈을 꿨던 친구들이 하나둘 좌절하고 위축되는 모습을 봐왔거든요. 저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하지만 지금도 저는 성병관리소 하나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는 소박한 꿈 하나는 품고 산다는 안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동두천의 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책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모여, 이 도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이 남긴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동두천의 미래를 밝히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 다크 투어리즘 중심지로 주목받는 성병관리소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미 주목받고 있다. 사우스다코다대 징 윌리암스 교수와 애리조나주립대 김수진 교수,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토드 헨리 교수 등은 성병관리소가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기억과 화해의 장소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전쟁과 인권 침해의 아픔을 간직한 상징적 장소”라는 평가를 내놓으며, 그 공간을 통해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교훈을 전하고자 한다.

 

성병관리소는 그 아픈 역사 덕분에 '다크 투어리즘'의 새로운 중심지로도 떠오르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과거의 흔적을 통해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장소로 이곳을 대하고 있다.

 

종교계와 시민들의 연대 움직임

 

천주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매월 성병관리소에서 ‘기억과 위로의 미사’를 이어가며 고통받았던 이들을 위한 추모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미사를 집전한 최재영 신부는 “이들은 누군가의 사랑하는 딸이자 누이였고, 그 고통이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미사를 통해 신부와 주민들은 고통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도록,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공대위는 오는 17일 일요일, 동두천시의 철거 계획을 막기 위해 전단지를 배포할 예정이다. 관계자는 “이번 전단 배포를 통해 시민들에게 철거의 문제점을 알리고, 성병관리소가 기억과 화해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도록 동두천시가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제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단순한 옛 건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장소가 되었다. 시민들과 활동가들은 이곳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기를 바란다. “이곳이야말로 전쟁과 인권 유린의 역사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철거 반대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게 동두천의 하루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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