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08(수)

36년 간 자전거와 동거 동락하는 장인(匠人)

9살 때 머슴살이로 시작해서 지금은 사장으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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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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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이 만난사람(12)=NGN뉴스] 삼천리 자전거 박주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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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이 만난사람(12)=NGN뉴스] 1950년대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처절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사는 것이 좋아져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당시만 해도 먹는 것이 최고의 화두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삼천리 자전거 박주선 대표는 아홉 살 때 머슴으로 남의 집에서 살며 주인집의 일을 도왔다. 5남매의 3째로 태어난 박대표는 어린나이 때부터 중풍을 앓던 부모님을 대신해 일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동시에 중풍을 앓아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자연스럽게 집안의 가장이 되어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집안을 도왔다.

 

수년간 머슴 생활을 하면서 기술을 배워야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박대표는 자전거 상회에 무급으로 입사해서 기술을 배우며 열심히 일했다.

 

타고난 성실성을 인정받은 그는 15살이 되어서 한 달에 2만원을 받는 사원이 되었다. 이후 자전거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수년이 지나자 그는 자전거 전문가가 되어 주위에서 자전거 장인으로 통했다. 자연스럽게 손님도 많아졌다. 2만원이던 월급은 시간이 가면서 더욱 많아졌다.

찾는 사람역시 증가해 영월 시골에서 춘천으로 자리를 옮겼다.

 

 

춘천에서 둥지를 틀다

 

춘천은 영월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회적인 인프라가 넘쳤다. 인구도 많고 사람도 많으니 박대표는 더욱 실력을 인정받아 월급은 계속 올라갔으며 보람도 많았다.

 

자전거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박대표는 타고난 성실성과 고객과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어서 한 번 찾은 사람은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위사람들은 말한다.

 

바쁠 때를 제외하고 박대표는 작은 일이라도 솔선수범해서 고객의 편의를 위해 일한다. 자전거 바람을 직접 넣어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보통 자전거 바람은 고객이 직접 넣는데 그는 시간이 허락할 때에는 직접 바람을 넣어준다.

 

사소한 것에 감동한다는 말도 있듯이 그는 자연스럽게 고객의 눈에 맞춰 살가움으로 서비스를 해 주니 자연히 단골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뛰어 놀 때 돈을 벌어야 했지만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살아왔기에 고객들에게 조금이라도 잘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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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직원으로 일하다

 

이러한 고객감동 서비스에 기술력까지 갖췄으니 도처에서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박대표의 성실성을 지켜 본 지인이 남이섬에 소개를 해서 14년간 직원으로 일했다.

 

남이섬에 근무할 때도 자전거 수리와 대여를 하는 업무를 했다. 자전거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던 터라 순조롭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남이섬은 낭만이 있었어요.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음식을 먹으며 축구와 배구도 하고 보물찾기도 하는 등 색다른 경험을 했지요. 또한 카세트를 틀어놓고 고고춤을 추는 등 생동감 넘치는 시절이었어요.”

 

박대표는 조금은 불편해도 사람냄새가 나는 그 당시가 그립다고 한다. 당시에는 용추계곡을 비롯해 백둔리와 도대리 등 계곡에 수많은 사람들이 놀러 와서 천렵을 하기도 하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삼겹살도 구워먹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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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자전거 사장이 되다

 

14년간 남이섬에서 직원으로 일한 그는 또 하나의 변신을 꾀했다. 바로 청평에 있는 삼천리 자전거 사장이 된 것이다. 평생 자전거 일만 해 온 장인으로 당연한 변신인 것이다.

 

9살 어린 나이로 머슴을 살던 박대표의 또 다른 인생승진인 것이다. 남이섬 직원으로 일 할 때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일을 했는데 내 사업을 한다는 것은 내각 직접 경영활동을 할 수 있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지만 어떤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경영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장이 되었어도 고객의 자전거에 직접 바람을 넣어주고 있다. 고객만족의 성실성이 오랫동안 체화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고객입장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기존의 상식을 좋은 쪽으로 지향하는 그의 경영 처세술은 고객과의 친밀감을 유지하는데도 좋을 뿐만 아니라 매출로도 연결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매 주 1만 명 이상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가평지역을 방문해서 식당이나 마트 등 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토요일과 일요일만 전철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도록 방침을 바꾸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지 못해 가평경기가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 매우 아쉽다고 말한다.

 

어느 한 분야에서 3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종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박주선 대표는 올곧게 자전거 분야에 한 우물을 판 자전거의 산 증인이 아닐 수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인생 2막에는 남들처럼 낚시도 하고 여행도 하며 여유를 갖고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토로했다. 박대표가 뜻하는 모든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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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7

  • 37184
인생역전

오~^^
인생 역전이네요~
그 어린나이에 그 멈청난일을
요즘애들은 그럴수있을까요

댓글댓글 (0)
대단

나도그 세대인데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하셨네요
와 대단해요
나라면 할수있을까?
나는 안될거 같네요
화이팅입니다~

댓글댓글 (0)
김승철

나도 군대에서
뺑이치며 처절하게 살았는데
이분에게는 명함을 내밀수가 없네요
훌륭하십니다
나도 좀더 신경써서 살아야겠어요

댓글댓글 (0)
바람길

한 분야에 36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변함없이 묵묵하게 지켜온다는 것은 말이 쉽지 凡人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좀 하다가 힘들면 다른걸 하고, 그게 안되면 또 다른 것으로 기웃거리는게 보통사람들의 습성이라면,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안되면 되게 하라!! 미쳐야 미칠 수 있다.(도달할 수 있다) 등등 절대긍정의 마인드로 끝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6.25전쟁 後, 누구나 할 것이 모두가 헐벗고 배곪았던 시절엔 열심히 노력만 하면 밥은 먹고 살았기에, 새벽부터 잘 살아보세~~ 외치며 일해 왔었지요.

암튼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온 박대표님의 끈기와 인내에 갈채를 보내며, 좋은 분을 소개해주신 김기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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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배

성실한 생활. 인생역전 드라마입니다
형님 항상 건강하세요~^^

댓글댓글 (0)
Bronson Choi

보통 자전거 바람은 고객이 직접 넣는데 그는 시간이 허락할 때에는 직접 바람을 넣어준다.



사소한 것에 감동한다는 말, 자연스럽게 고객의 눈에 맞춘서비스, 자연히 단골이 늘어난다. 멋지십니다~~^^

댓글댓글 (0)
김동암

장인의 외길인생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네요 남은삶 소박한 꿈 이루어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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