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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N뉴스 양상현 기자 | 기사입력 : 2021.04.0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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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NGN뉴스]양상현 기자=경기 동두천시가 변화하고 있다. 그것도 외곽의 작은 마을로부터다.

마을의 기능을 되살려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등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마을공동체사업 때문이다. 최근에는 마을방송국으로 인해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턱거리마을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주민들이 느끼고 믿을 수 있는 건강, 안전, 생명, 인권, 복지 등이 최우선 가치로 인정받는 새로운 세상을 소통을 통해 그리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마을이 행복하고 살기 좋으면 굳이 사람들이 대도시로 떠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지역 주민들이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 동두천나눔의집의 방침이다.

동두천시 광암동 턱거리마을 성공회 나눔의집에는 이 마을 활동가이자 일꾼으로 소문난 한영민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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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1회 순자문화제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한영민 마을활동가 [사진=양상현 기자]

3월31일 마지막날 저녁, 턱거리마을사람들 협동조합에서는 '공부방 학부모'에서 '지역의 활동가'로 변화해 온 한영민씨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공자(孔子)에 따르면 "나이는 세월이 주는 게 아니라, 세상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젊은이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지만, 나이 먹은 사람은 세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한씨는 이제 군에서 제대한 아들과 중학생 딸을 둘 정도로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이 자리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서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선 모두 다 같은 아마추어"라는 가수 이승철씨의 가사를 인용하며, 자신의 20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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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나눔의집 마을활동가 한영민씨 [사진=양상현 기자]

그는 충청북도 청주가 고향이지만, 곧 서울로 이사해 초등학교까지 서울에서 마쳤다. 그 후, 동두천으로 이사해 동두천여중, 동두천여상을 졸업했다. 그의 꿈은 미용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해, 출산과 함께 미용사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18세부터 일했던 카센터에서 같이 일하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광암동은 집값이 싸니 집을 사서 이사오라"는 권유를 받고 지난 2002년 외인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외출도 드물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2년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공부방을 다니고 싶다고 해, 아이를 따라 찾아간 곳이 진흙투성이의 비포장길 언덕 위의 허름한 건물인 성공회 나눔의 집이었다.

당시 막 발령을 받은 여사제가 있어, 낯설고 신기했지만 곧 그 여사제와 친해져 나눔의 집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사람과의 인연은 신앙과의 인연으로 이어져, 성공회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됐다.

공부방은 조부모, 한 부모 가정 등 가난하고 소외된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열악한 조건의 환경에서 아이들을 혼자서 돌보고 있는 여사제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했다.

공부방에 나가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주던 일이,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게 됐다. 그 후, 교회에도 나가게 되어, 세례도 받았다.

세례명인 '모니카'는 기도와 인내로써 방탕한 생활을 하던 아들과 까다로운 시어머니를 개종시켰지만, 그 다음 해 과부가 되고 만 성녀 모니카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교회를 다니면서 둘째 아이를 갖게 됐고, 그 아이를 출산하기 전날까지 공부방에 출근했다. 그때는 일하는 것이 즐겁고,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출산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공부방이 궁금해 아이를 업고 다시 공부방에 출근했다. 4개월 후에는 여름캠프에도 합류했다.

몇 년 후 제주도로 일하러 갔던 남편이 갑자기 사고로 숨졌다. 익숙한 고통이라고 해도 덜 아픈 것은 아니다. 위기가 그냥 위기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절망의 골이 깊어져 재기하기 어렵다. 이럴 때 기도는 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버팀목이 되었다. "간혹 일이 힘들어 간절하게 기도하다 보면 내가 그만두지 않아야 할 이유를 꼭 찾게 된다"라며 "정신을 차리고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온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 생각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나누는 마음이 마을활동에 필요한 덕목"이라며, "특히, 배려와 나눔은 필수 덕목이며,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지역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활동가로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으면 모두 마을 활동가"라며 "스스로 자기를 마을활동가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누가 ‘당신은 활동가다’라고 얘기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발성을 가지고 자신이 활동가라고 여기면서 변화를 느끼고 또 변화를 위해서 움직이겠다고 하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붙이는 이름이 활동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활동가는 스스로가 이 활동에 대해서 의미와 비전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며 "그 과정이 없으면 설득과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다. 또 "지역사회 안에서 주민들을 발굴하고 활동을 촉진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일들이 아주 작아 보이지만 더 큰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파급효과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동두천나눔의집은 마을공동체를 알리고 확산하는 활동을 함께하기 위해 '사람책'으로 분별공동체의 깊이를 더하는 공부모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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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나눔의집은 마을공동체를 알리고 확산하는 활동을 함께하기 위해 '사람책'으로 분별공동체의 깊이를 더하는 공부모임을 갖는다. [사진=동두천나눔의집]

이 과정은 지역의 가치를 발굴하고 수집하는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턱거리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을활동가를 대상으로 인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다.

동두천나눔의집 김현호 신부는 “턱거리마을이라는 공간과 이곳에서 활동하는 인물 등 마을 아카이빙 작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지역의 과거를 기록함으로써 마을의 가치를 발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작업”이라며 “특히 마을활동가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활동이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확산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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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두천 턱거리마을의 숨은 일꾼 한영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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