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사포 소개'했지만, 행사는 오히려 UP

25일 가평군재향군인회가 주관한 6.25 전쟁 76주년 기념식에서 호명된 내빈 명단, 무려 123명에 이른다.[출처/NGN뉴스 유튜브]
가평군 각종 행사장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온 이른바 '소개병'이 드디어 고쳐질 조짐을 보였다. 오늘(25일) 열린 6·25전쟁 제76주년 기념식에서다. 가평군재향군인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참전용사와 유가족, 66사단 장병 등 500여 명이 참석해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내빈 소개 방식이었다. 예년 같으면 행사 시작과 함께 기관장, 단체장, 각급 사회단체 인사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호명하느라 20~30분은 훌쩍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행사장 전광판에 내빈들의 직책과 이름을 한꺼번에 띄우고 사회자가 일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소개에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50여 초. 행사의 흐름은 끊기지 않았고 참석자들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사실 이것이 정상이다.
지난해 같은 행사에서는 내빈 소개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본보 역시 당시 "주객이 전도된 행사"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작 가장 큰 예우를 받아야 할 사람은 6·25 참전용사와 유가족인데, 행사에서는 기관장부터 각종 단체장, 심지어 동네 유지들까지 소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비됐다.
이런 풍경은 비단 이날 행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평군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마다 반복되는 고질병이다. 사회자는 열심히 이름을 부르고 참석자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영혼 없는 박수를 친다. 특히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저 사람이 누구지?"라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사회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에 습관처럼 손뼉만 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5월 6일 열린 어버이날 효잔치였다. 효도 잔치라면서 내빈 소개만 거의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지친 어르신들의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한 분 두 분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정작 초청가수가 무대에 올랐을 때는 객석 대부분이 비어 있었고, 겨우 30여 명만 남아 공연을 지켜보는 웃지 못할 장면까지 연출됐다.
행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행사의 주인공보다 내빈 소개가 더 길어서는 안 된다. 내빈은 소개받기 위해 참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사의 주인공을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해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이 같은 '소개병'은 선거 유세장에서도 쉽게 목격됐다. 6.3 지방선거 당시 A 후보는 유세차에 오를 때마다 지지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연설을 시작하곤 했다. 이름을 불러주면 반가워하는 분위기가 생기다 보니, 미처 호명되지 않은 사람은 "저도 여기 있어요"라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외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름을 많이 부를수록 친밀감이 생기고 표심을 얻는다는 선거 문화가 일상적인 행사장까지 이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군수가 먼저 바뀌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행사 때마다 직책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형님", "누님", "동생", "어르신", "회장님"을 반복해서 부르는 것이 과연 군민과의 소통인지, 아니면 오래된 정치문화의 관행인지를 고민해 볼 시점이다.
이번 재향군인회의 6·25 기념식은 작은 변화였지만 큰 의미를 남겼다. 불필요한 의전을 줄이니 행사는 훨씬 품격 있어졌고, 무엇보다 참전용사와 유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가평의 '소개병'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행사 문화의 고질병이다. 이제는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그 첫 처방은 어렵지 않다. 행사의 주인공을 내빈보다 앞세우는 것. 이번 6·25 기념식이 가평군 행사 문화를 바꾸는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BEST 뉴스
-
후보 3명 뽑고 다시 ‘감사’…가평시설공단 사태, 임명권자 책임은 없나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신임 이사장 선임이 후보 3명까지 압축한 뒤 돌연 멈춰 섰다. 가평군이 선임 절차에 하자가 있었는지 확인하라며 공단에 자체감사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태원 가평군수 공단은 가평군 산하 지방공기업이고 이사장 최종 임명... -
군수도, 공직사회도, 지역주민도 모르는 가평 ‘공동화 위기’…3년 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지난 8일 서태원 가평군수가 '군민의날'을 기념해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 정연수 기자] 경기 가평군이 인구감소지역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3년 뒤로 다가온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개통이 지역 관광산업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중장기 대응 전략을 점검... -
[속보]가평시설관리공단 이사장 공모 ‘중대 하자’…최종 후보 3명 뽑고도 원점으로
경기 가평군시설관리공단의 차기 이사장 선임 절차가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단계부터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는 자체감사 결과로 인해 원점에서 재검토될 상황에 놓였다. 이미 이사장 공모에 지원한 9명 가운데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후보자 3명까지 선정한 상... -
[팩트체크] 면접 질문지 ‘사전 유출’ 의혹…확인된 사실은 어디까지인가
가평군시설관리공단 이사장 후보 면접을 앞두고 면접 질문지가 사전에 유출돼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지역언론은 6일 관련 보도를 통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보가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그렇다면 실제 질문지는 언제 만들어졌고, 누... -
3개 시·군 단체장 재산 뜯어보니…백영현 29.9억·서태원 15.1억·김덕현 14.1억
경기북부 인접 지역인 가평·포천·연천 3개 시·군 단체장의 2026년 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을 비교한 결과, 신고재산 규모뿐 아니라 재산을 구성하는 방식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된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백영현 포천시장은 29억9,326만2천원, 서태원 ... -
[끝까지 판다] 다 해놓고 이제 와 공법 바꾸자?…가평 소각장 ‘뒤늦은 열분해론’ 저의는
4년간 주민을 설득해 입지를 정하고, KDI 검토를 거쳐 제3자 제안공고와 업체 평가 단계까지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소각 방식을 바꾸자는 주장이 등장했다. 왜 하필 지금인가. 가평군이 추진하고 있는 하루 85톤 규모 자원회수시설을 둘러싸고 최근 일부 주민·단체 관계자들이 기존 스토커 방식에 문제를 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