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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70년 침묵의 청구서, 이제 국가가 답할 차례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2.26 17:13
  • 조회수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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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윤국 전 시장의 '국방부 직행'이 던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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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은 오랫동안 기다렸다. 분단의 최전선에서 군부대와 사격장과 탄약고를 품고 살아온 70년. 그 세월 동안 포천 시민들이 감내한 것은 단순한 생활의 불편이 아니었다. 개발의 기회를 원천 봉쇄당한 채 국가 안보의 방패막이로 살아온 구조적 희생이었다. 그리고 그 희생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 70년의 청구서를 들고 박윤국 전 포천시장이 최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문을 두드렸다. 6군단 부지 반환, 15항공단 이전, 사격장 피해 보상 확대, 탄약고 인근 건축 규제 완화, 국방상생마을 조성, 기부대양여 방식 재검토. 6가지 현안을 담은 이 건의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다. 수십 년간 쌓여온 포천의 정당한 권리 요구다.


◇ 열린 창문을 놓치지 않은 정무적 판단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 북부 타운홀 미팅에서 미군 반환 공여지 문제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고 100년 무상 임대 방안을 검토하겠다" 는 원칙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국가 정책의 방향 전환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박 전 시장은 이 창문이 열린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대통령의 원칙 선언을 논거로 삼아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포천의 현안을 연결시킨 것은 탁월한 정무적 판단이다. 원칙은 선언됐고, 이제 그 원칙을 포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라는 요구를 공식화한 것이다. 국방부 측이 긍정적인 검토 답변을 내놓은 것은 이 논리가 설득력을 가졌음을 방증한다.


현직이 아닌 전직 시장이 이 역할을 자임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현직 시장은 행정적 절차와 외교적 언어의 제약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박 전 시장은 포천 문제의 역사적 맥락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면서도, 현직의 제약 없이 보다 직접적인 언어로 국가의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퇴임 후에도 포천의 미래를 위해 발로 뛰는 그의 행보는 지역에 대한 진정한 헌신의 표현이다.


◇ '기부대양여'라는 낡은 공식을 깨야 한다


이번 건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기부대양여 방식의 근본적 재검토 요구다.


기부대양여란 지자체가 군에 새로운 시설을 지어주는 대신 기존 군 부지를 돌려받는 방식이다.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 공식에는 근본적인 불공정이 내재되어 있다. 지역이 수십 년간 감내한 희생과 기회비용은 계산에 넣지 않은 채, 부지를 돌려받으려면 또다시 지역이 비용을 부담하라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포천의 경우는 더욱 명백하다. 6군단 부지 27만 평 중 8만 평이 시유지다. 포천 시민의 땅을 70년간 무상으로 사용해 온 국가가, 그 땅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또 다른 시설 건립을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박 전 시장이 제안한 75년 무상 임대 방안은 이 불합리한 공식을 깨는 첫 번째 균열이다. 국가가 사용한 만큼,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의 전환. 이것이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 이라는 원칙의 실질적 내용이어야 한다. 동양 최대 사격장을 품고 살아온 포천에 기존의 기부대양여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70년의 희생을 두 번 외면하는 일이다.


◇ 6개의 퍼즐이 맞춰질 때 포천이 달라진다


6대 현안은 각각 독립된 사안이 아니라 포천 발전의 퍼즐 조각들이다. 이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질 때 포천의 미래 지도가 완성된다.


6군단 부지가 반환되면 포천 도심 재생의 핵심 거점이 생긴다. 수십 년간 개발의 공백으로 남아 있던 27만 평이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15항공단이 중장기적으로 이전하면 항공 소음과 고도 제한에서 벗어난 새로운 개발 가능성이 열린다. 사격장 피해 보상이 확대되고 누락된 마을의 이주 대책이 마련되면, 오랫동안 방치됐던 피해 주민들의 삶이 비로소 회복의 궤도에 오른다. 영중면 탄약고 인근 건축 규제가 완화되면 주거 환경 개선과 함께 지역 경제 활성화의 물꼬가 트인다. 군 유휴지를 활용한 국방상생마을이 조성되면 군과 지역이 갈등이 아닌 공존의 관계로 새롭게 정립되는 선도 모델이 탄생한다.


이 퍼즐들이 맞춰질 때 포천은 비로소 '군사도시'라는 오랜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도농복합 발전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기회발전특구 지정 추진, 인구성장국 신설 등 포천시가 추진 중인 각종 발전 전략도 이 군 현안들이 해소될 때 비로소 실질적인 동력을 얻는다. 군 현안 해결은 포천 발전의 선택 과제가 아니라 전제 조건이다.


◇ '긍정적 검토'를 '실질적 실행'으로


안규백 장관이 긍정적인 검토 답변을 내놓은 것은 분명 고무적인 신호다. 그러나 포천은 '검토'와 '실행' 사이의 긴 거리를 수없이 경험해왔다. 희망적인 답변이 구체적인 이행 일정과 예산 확보로 이어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대통령의 원칙 선언, 국방부 장관의 긍정적 검토, 그리고 박윤국 전 시장이 공식화한 구체적 요구가 삼박자를 이루고 있는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다. 이 기회를 실질적인 제도 변화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포천시와 지역 정치권,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지속적인 관심과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


박 전 시장이 강조한 "속도와 실행" 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70년을 기다려온 포천 시민들에게 더 이상의 지연은 또 다른 희생을 의미한다. 긍정적 검토가 구체적 로드맵으로, 로드맵이 실질적 예산 반영으로, 예산이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는 속도가 포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박윤국 전 시장이 던진 돌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그 파문이 잔잔해지기 전에 포천 전체가 함께 물결을 만들어야 할 때다. 70년의 청구서에 국가가 화답하는 역사적 순간, 포천은 그 주인공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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