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소식을 다시 접한 순간, 코끝이 먼저 반응했다.신문의 활자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그해 가을 새벽 공기를 뒤덮던 소독약 냄새였다.
2019년, 포천. 그때 우리는 퇴근도, 매뉴얼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현장으로 밀려 나갔다.당시 행정은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시장실에는 야전침대가 들어왔고, 공무원의 하루는 날짜가 아니라 상황으로 구분됐다. 오늘이 월요일인지, 새벽 3시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직 안 막혔는가”였다. 멧돼지는 시간을 가리지 않았고, 바이러스는 근무시간표를 읽지 않았다.
나는 그때 현장에서 보았다.163개의 방역 초소가 세워지고, 하루 700명이 넘는 민·관·군·경 인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자동 출입문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밤새 용접 불꽃이 튀었고, 군 장병들이 도로를 메웠다. 소방차가 지방도를 씻어내는 동안, 농민들은 초소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번엔 막아달라”고 말했다.
그 모든 판단의 중심에 있었던 이는 당시 포천시장이었던 박윤국이었다.그는 자주 말했다. “방역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다.”그 말은 구호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집에 가지 않았다. 시장이 떠나지 않으니 국장도, 팀장도, 말단 직원도 돌아갈 명분이 없었다. 그건 강요가 아니라 묵시적 약속에 가까웠다.
매뉴얼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현장은 매뉴얼보다 앞서 있었다.
환경부와 농식품부의 지침이 엇갈리던 순간, 포천시는 욕을 먹을 각오로 결정을 내렸다. 엽사 70명을 동원해 멧돼지 4천 마리를 사살했다. 누군가는 “과잉 대응”이라 했고, 누군가는 “독단”이라 비판했다. 그러나 그 선택 덕분에 포천은 방역 청정 지역을 지켜냈다.
지금 다시 ASF가 포천을 덮쳤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시스템의 진화보다 사람의 태도를 먼저 떠올린다.오늘의 행정은 분명 더 세련됐다. 디지털 방역 시스템이 있고, 지침은 정교해졌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그 시스템을 돌리는 사람은 얼마나 절박한가.
행정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말이 아니라 유능함이다.7천 마리가 넘는 생명이 땅에 묻히는 참담한 순간, 농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매뉴얼대로 했다”는 보고서가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함께 버티고 있다”는 확신이다.
2019년의 포천에서 우리는 알았다.방역은 보여주기식 소독차의 노란 경광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공무원의 신발 밑창이 닳고,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그 시간들이 쌓여 ‘행정의 밀도’가 된다는 것을.멧돼지와 바이러스는 공무원이 퇴근한 밤을 노린다.
그래서 위기 속 행정에는 퇴근이 없었다. 그게 미담이어서가 아니라, 그것 말고는 시민을 지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지금 다시 묻고 싶다.우리는 그때의 각오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가.행정의 밀도가 곧 시민의 생존이라는 그 단순하고 잔인한 진실을,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2019년의 포천은 요새였다.그 요새를 만든 것은 매뉴얼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태도였다.지금 이 질문은 과거를 향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를 향한 경고다.
BEST 뉴스
-
[단독]성폭행 고소 되레 ‘무고’ 판단…경찰,가평군의원 A씨 검찰 송치
과거 한 남성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던 가평군의회 A 의원이 이번에는 무고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믿을 만한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A 의원에 대한 무고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A 의원은 지난 2021년 B씨... -
[직격인터뷰] 포천에 집 두고 가평 모텔살이…연제창은 왜 ‘한 달 살기’를 택했나
-민주당 포천·가평지역위원장 취임 후 가평읍·청평·설악·조종서 일주일씩 생활 -“잠깐 방문해 명함만 돌려서는 가평의 소외감과 절박함 이해할 수 없어” -“특정 정당만 지지하기보다 잘하면 기회 주고 못하면 바꾸는 영리한 선택 필요” 가평군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공유... -
[현장 르포] ‘경자유전’ 칼바람에 얼어붙은 농촌 부동산…가평 개발경제가 멈췄다
-설악면 외지인 소유 농지 ‘반값 매물’까지 등장했지만 거래 절벽 -중장비·주유소·철물점·식당으로 불황 확산…경기북부 농촌경제 ‘도미노 위기’ 경기 가평군 설악면의 농지. 이 땅은 서울에 거주하는 최 모씨가 세컨하우스를 짓기 위해 3년 전 매입했다. 그런데 농지 전수 조사가 시작되면서 매... -
행감 자료 25건 중 22건 두 초선이 요구…정말 필요한 자료인가
-박영희 14건·이오남 8건으로 전체 88% 차지.특정 필지·상인회장 선출·민간 스크린골프장까지…감사 목적 불분명한 자료도 -정당한 감시권이지만 범위·쟁점 없이 요구하면 행정력 낭비 가평군의회 외경[사진/정연수 기자] 가평군의회가 오는 9월 행정사무감사를 앞두고 집행부에 요구한 자료 25건 가운... -
“경기북부의 눈과 귀”…NGN뉴스 유튜브 구독자 6만 명 돌파
-55세 이상 시청자 82%…중장년층 신뢰받는 경기북부 대표 지역언론 자리매김 경기북부의 크고 작은 현장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해 온 NGN뉴스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 6만 명을 넘어섰다. 3년 전 새롭게 출발한 NGN뉴스 유튜브의 누적 조회수도 1천만 회에 육박했다. 단순 환산하면 국민 5명당 ... -
[단독] 본보 보도한 포천시의원 ‘산악회 현금 찬조’ 의혹, 선관위 고발로 이어져
본보가 지난 7월 13일 단독 보도한 포천시의회 의원의 산악회 ‘현금 찬조금’ 의혹이 포천시선거관리위원회 고발로 이어졌다. 국민의힘 소속 포천시의회 A 의원은 지역 산악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