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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퇴근이라는 말이 사라졌던 밤들... 2019년 포천, ‘야전 행정’을 기억하는 한 공직자의 고백

  • 정연수 기자
  • 입력 2026.01.27 17:51
  • 조회수 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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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국 2.jpg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소식을 다시 접한 순간, 코끝이 먼저 반응했다.신문의 활자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그해 가을 새벽 공기를 뒤덮던 소독약 냄새였다.


2019년, 포천. 그때 우리는 퇴근도, 매뉴얼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현장으로 밀려 나갔다.
당시 행정은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시장실에는 야전침대가 들어왔고, 공무원의 하루는 날짜가 아니라 상황으로 구분됐다. 오늘이 월요일인지, 새벽 3시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직 안 막혔는가”였다. 멧돼지는 시간을 가리지 않았고, 바이러스는 근무시간표를 읽지 않았다.

 

나는 그때 현장에서 보았다.163개의 방역 초소가 세워지고, 하루 700명이 넘는 민·관·군·경 인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자동 출입문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밤새 용접 불꽃이 튀었고, 군 장병들이 도로를 메웠다. 소방차가 지방도를 씻어내는 동안, 농민들은 초소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번엔 막아달라”고 말했다.

 

그 모든 판단의 중심에 있었던 이는 당시 포천시장이었던 박윤국이었다.그는 자주 말했다. “방역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다.”그 말은 구호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집에 가지 않았다. 시장이 떠나지 않으니 국장도, 팀장도, 말단 직원도 돌아갈 명분이 없었다. 그건 강요가 아니라 묵시적 약속에 가까웠다.

매뉴얼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현장은 매뉴얼보다 앞서 있었다.


환경부와 농식품부의 지침이 엇갈리던 순간, 포천시는 욕을 먹을 각오로 결정을 내렸다. 엽사 70명을 동원해 멧돼지 4천 마리를 사살했다. 누군가는 “과잉 대응”이라 했고, 누군가는 “독단”이라 비판했다. 그러나 그 선택 덕분에 포천은 방역 청정 지역을 지켜냈다.

 

지금 다시 ASF가 포천을 덮쳤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시스템의 진화보다 사람의 태도를 먼저 떠올린다.오늘의 행정은 분명 더 세련됐다. 디지털 방역 시스템이 있고, 지침은 정교해졌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그 시스템을 돌리는 사람은 얼마나 절박한가.

 

박윤국.jpg행정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말이 아니라 유능함이다.7천 마리가 넘는 생명이 땅에 묻히는 참담한 순간, 농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매뉴얼대로 했다”는 보고서가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함께 버티고 있다”는 확신이다.

 

2019년의 포천에서 우리는 알았다.방역은 보여주기식 소독차의 노란 경광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공무원의 신발 밑창이 닳고,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그 시간들이 쌓여 ‘행정의 밀도’가 된다는 것을.멧돼지와 바이러스는 공무원이 퇴근한 밤을 노린다.

 

그래서 위기 속 행정에는 퇴근이 없었다. 그게 미담이어서가 아니라, 그것 말고는 시민을 지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지금 다시 묻고 싶다.우리는 그때의 각오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가.행정의 밀도가 곧 시민의 생존이라는 그 단순하고 잔인한 진실을,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2019년의 포천은 요새였다.그 요새를 만든 것은 매뉴얼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태도였다.지금 이 질문은 과거를 향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를 향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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