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뿌리는 '관치(官治)' 너머, 주민의 '근육'을 키우는 실험
지방 소멸과 인구 절벽의 위기 앞에서, 그동안 수많은 지자체가 선택한 가장 쉬운 길은 '현금 살포'였다. 명분은 그럴싸했다. 공동체 활성화, 도시 재생, 주민 자치.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토양에 쏟아부은 예산은 뿌리를 적시기도 전에 증발하거나, 소위 '보조금 사냥꾼'들의 배만 불리는 독(毒)이 되곤 했다.
이러한 행정의 타성 속에서 포천시가 2026년을 기점으로 꺼내 든 카드는 꽤나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론 냉정하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예산을 주지 않겠다"는 선언. 바로 '누구나 공동체 교육' 의무화 조치다. 이는 단순히 행정 절차 하나가 늘어난 것이 아니다. 관(官)이 주도하던 지역 관리의 패러다임을 주민의 실질적 역량(주민력, 住民力)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전포고’와 같다.
◇ '퍼주기'와의 결별, 옥석 가리기의 시작
포천시의 이번 결정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진입 장벽의 설정'이다. 신규 공모사업에 참여하려는 공동체는 구성원 과반수가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원칙은, 그간 무분별하게 난립했던 '보여주기식 단체'들을 걸러낼 최소한의 거름망이다.
사실, 좋은 뜻만 앞세워 우후죽순 생겨난 모임들이 예산 집행 과정에서 좌초되거나, 지원금이 끊기는 순간 공중분해 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돈만 주는 지원은 독"이라는 시 관계자의 말은 뼈아픈 자기반성이자, 현장의 현실을 직시한 고백이다. 직장인과 학생을 위해 평일 야간과 주말까지 교육 시간을 할애한 배려 역시, 이 정책이 단순한 요식행위가 아님을 보여준다.
◇ 비판적 통찰: '행정의 하청'이 아닌 '진짜 자치'가 되려면
하지만 우리는 이 지점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이 교육이 주민을 진정한 '지역의 주체'로 세우는 과정인가, 아니면 행정의 편의를 위해 '말 잘 듣는 주민'을 길러내는 훈육인가?
커리큘럼에 포함된 '공모사업 구조 파악'이나 '예산 집행 학습'은 실무적으로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주(主)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만약 교육의 내용이 복잡한 회계 정산법을 가르치고, 공무원이 선호하는 사업계획서 작성법을 전수하는 데 그친다면, 이는 주민을 '행정의 하청업자'로 전락시키는 꼴이다.
진정한 '주민력'은 서류 작업 능력이 아니라, 마을의 문제를 행정의 문법이 아닌 주민의 시선으로 정의하고, 때로는 관과 부딪히더라도 대안을 관철해 내는 '정치적 효능감'에서 나온다. 교육을 이수한 주민들이 기껏해야 "시청에서 하라는 대로 서류를 잘 꾸미는 기술"만 늘었다면, 이는 관치(官治)의 세련된 변종에 불과하다.
◇ 제언: 학습을 넘어 '실패할 권리'까지 보장해야
포천시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 단계의 대안이 필수적이다.
첫째, 커리큘럼의 질적 전환: 단순히 '돈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갈등 관리, 민주적 의사결정, 지역 자원 조사 등 공동체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인문·사회적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둘째, 행정의 기다림: 교육을 수료한 주민들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다소 거칠고 행정 편의에 맞지 않더라도, 이를 수용하고 다듬어줄 수 있는 '유연한 행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주민이 설계한 판을 관이 재단하려 들면 자생력은 싹트지 않는다.
셋째, 지속가능한 생태계: 교육은 시작일 뿐이다. 공모사업 종료 후에도 이들이 사회적 경제 조직 등으로 발전해 자립할 수 있도록 '단계별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연결되어야 한다.
2026년 포천의 봄, 시청 사무실이 아닌 주민들의 학습 현장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 시도가 단순한 '보조금 집행 교육'을 넘어, 풀뿌리 민주주의가 단단히 뿌리 내리는 토양이 되기를 기대한다. 관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고, 주민은 요구하되 의존하지 않는 것. 그것이 포천시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공동체'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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