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쌀한 공기 속에 포천시청 앞 광장이 12년의 시간을 거슬러온 억울함으로 채워졌다. 36년간 공직에 헌신한 한 공무원이 '공문서 위작'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강단에 설 위기에 처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거대한 굴레로 시작된 재판은 12년 만에 무죄로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사법부는 '노조 활동 출장'이라는 '별건'을 들어 그의 명예에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했다.
이 사태를 시민적 시각에서 냉철하게 바라볼 때, 우리는 법치주의의 외피를 쓴 '형식의 칼날'이 '실질의 정의'를 얼마나 둔감하게 베어내는지를 목도하게 된다.
◇ 시대착오적 법리, 실질을 외면한 1심 판결
사건의 핵심은 지극히 단순하다. 이홍용 전 공무원노조 경기본부 사무처장이 노조 활동을 위해 출장을 가면서 시스템에 '근무지 내 출장'으로 등록했다는 것. 이것이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공전자 위작'의 실체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짚어야 할 시대적 맥락이 존재한다. 당시 공무원노조는 '법외노조' 상태였다. 단체협약이라는 공식적인 통로가 막혀있던 시절, 노조 활동 보장은 단체장과의 '구두 합의'라는 비공식적 형태로 존재했다. 노조 측은 당시 포천시장이 "회의나 교육 등 실내 활동은 근무지 내 출장으로 처리한다"고 합의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이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허위 보고가 아니라, 헌법상 보장된 노동 3권을 실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합의의 이행이었다. 1심 재판부는 이 거대한 맥락을 외면했다. 12년간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로 한 개인의 삶을 옭아맸던 국가가, 그것이 무죄로 드러나자 행정 시스템상의 형식적 불일치를 빌미로 '사법적 탄압'을 이어가는 형국이다.
◇ 검사의 출장부와 공무원의 출장부
이홍용 전 처장의 절규는 비판적 통찰의 핵심을 찌른다. "검사들의 출장 목적과 행선지는 100% 일치하는가?"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처럼 사용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권력기관의 불투명한 행정 처리는 관대한 사법의 시선 아래 보호받는 반면, 합의에 따른 노조 활동은 '위작'이라는 엄격한 법의 잣대로 단죄된다. 이는 명백한 이중잣대이자 법적 형평성의 붕괴다.
더욱이 그가 "동료 공무원들이 검경의 협박에 가까운 전화에 시달리다 사실과 다른 증언을 했다"고 토로한 지점은, 이 사건이 단순한 법리 다툼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비대칭적 폭력이 개입된 사안임을 시사한다. 지난 10월, 수원지법의 다른 재판부가 유사 사건의 동지들에게 "국가 폭력으로 고통받은 피고인에게 국가를 대신해 사과한다"고 밝힌 대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 '사무를 그르칠 목적'이 없었다면
다행히 현장에서 제기된 법적 쟁점은 항소심이 나아가야 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2020년 대법원 판례(2020도11294)는 '공전자 위작'의 성립 요건으로 '권한 남용'과 더불어 '사무처리를 그르치게 할 목적'의 존재를 명시하고 있다.
이제 2심 재판부에 묻는다. 당시 시장과 구두 합의를 하고 노조 활동을 한 이 전 처장에게 과연 '공무를 그르칠 악의적 목적'이 있었는가? 오히려 그는 합의된 내용을 이행함으로써 행정의 신뢰를 지키려 한 것이 아닌가? 1심 재판부가 간과한 이 '목적'의 존재 여부가 항소심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또한, '법외노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행위가, 행정 시스템상의 불일치를 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적 가치보다 무겁게 처벌받아야 하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명예회복을 넘어,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사법부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법 정의를 기다려온 이들에게, 2심 재판부는 형식 논리에 매몰된 시대착오적 판결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와 시대적 맥락을 바로 세우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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