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재 솜방망이 처벌, 이주노동자의 생명 경시
경기 포천의 한 돼지고기 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 와폰(가명, 20대, E-9 비자) 씨는 지난달 끔찍한 사고를 겪었다.

대형 믹서기에 고기를 넣는 작업 중 왼쪽 손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사측의 지시였다. 작업 효율을 이유로 맨손으로 작업을 하도록 강요받았던 그녀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사고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와폰 씨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충격도 심각하다. 그녀는 “사고 이후 잠을 잘 수가 없다. 계속 그 순간이 떠오르고, 악몽에 시달린다”며 “온몸으로 퍼지는 통증은 진통제로도 가라앉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 뚜렷한 그녀는 최근에서야 정신건강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산재 승인은 받았지만, 정신과 치료에 대한 보상은 별도로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와폰 씨를 지원하는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관계자는 “사고 이후 공장에서는 도구를 사용해 작업하도록 바뀌었다고 하지만, 이는 이미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 뒤의 조치일 뿐”이라며 “사업주의 안전 불감증과 이윤 우선주의가 이런 비극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와폰 씨는 “내 손이 다친 뒤에야 작업 방식이 바뀌었다. 왜 더 일찍 안전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사례는 한국의 산업재해(산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이주노동자 사망자 수는 3천 명에 달하며, 이 중 대다수가 과로사 등 산재로 추정된다. 그러나 90% 이상이 사인 규명 없이 졸속 처리되는 실정이다.
와폰 씨의 사고와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가명, 30대) 씨는 채소 농장의 열악한 기숙사에서 동사했다.
한파 속에서 난방이 멈춘 지 이틀째 되던 날, 그녀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사업주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두 사건 모두 사업주의 과실이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산재율이 높은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꼽는다. 노동자 생명을 경시하는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안전 관리에 소홀한 태도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한 노동권 전문가는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기업살인법을 도입해 강력한 처벌로 산재를 크게 줄였다”며 “한국도 중대재해처벌법의 허점을 보완하고, 실질적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다.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관계자는 “친자본적 성향이 강한 정당이 집권해도 산재 문제 해결은 요원할 가능성이 높다”며 “노동자와 시민이 직접 나서 체제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한, 이 비극은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와폰 씨는 여전히 통증과 악몽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녀는 “나는 가족을 위해 이곳에 왔을 뿐인데, 이런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국 사회가 외면해 온 노동자의 아픔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노동자의 생명을 이윤보다 앞세우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