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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언제 공연 시작해?”…하품 속 50분 내빈 소개

  • 정연수 기자
  • 입력 2026.05.06 18:40
  • 조회수 9,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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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빈 소개에 지친 어르신들 초청가수 공연 땐 '텅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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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가수 김혜연 씨가 텅빈 객석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사진/정연수 기자]

 

‘효’ 외친 행사장의 불편한 풍경…주인공은 사라지고 의전만 남았다. 6일 오후 2시. 가평군체육관 입구에는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오늘 김혜연 온다며?” “오랜만에 나와서 사람 구경도 하고 좋지 뭐.” 어버이날을 앞두고 열린 제54회 어버이날 기념식과 효도공연. 행사장에는 이른 시간부터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 손을 맞잡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노부부들이 줄을 이었다. 행사 시작 전부터 객석은 금세 가득 찼다.

 

하지만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행사 시작 직후부터 이어진 것은 공연이 아니라 끝없는 이름 호명이었다. 기관장, 단체장, 내빈 소개가 쉼 없이 이어졌고, 마이크는 연단 위를 떠나지 않았다. "○○기관장님 참석하셨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진행자의 멘트에 영혼없는 박수만 계속됐다. 차라리 강요에 가까웠다. 

 

게다가 소개가 끝나면 축사가 또 시작됐다. 축사가 끝나면 또 다른 소개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박수를 치던 어르신들도 시간이 흐르자 점점 표정이 굳어갔다.

 

오후 2시 30분. 객석 맨 뒤편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는 허리를 두드리며 연신 자세를 바꿨다. 의자는 딱딱했고, 행사장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언제 노래 나와…” 옆자리 할머니가 작게 옆 할머니께 물어보았다. "나도 모르지,(노레를 )하긴 할래나..."

 

오후 2시 40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하품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떤 어르신은 고개를 떨군 채 눈을 감았고, 또 다른 어르신은 답답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천천히 걸었다.

 

한 노인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인들 오래 못 앉아 있어. 허리 아프고 다리 저린데 소개를 왜 이렇게 오래 하는 거야.”며느리로 보이는 듯한 중년 여인에게 할머니가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실제 이날 내빈 소개와 축사에 걸린 시간은 50분 가까이 됐다. 행사장의 주인공은 분명 어르신들이었지만, 무대의 중심은 내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1부 기념식이 끝나자 더 씁쓸한 장면이 이어졌다. 서태원 군수를 비롯한 일부 기관·단체장들이 행사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빈석이 하나둘 비기 시작했고, 공연 시작 전부터 행사장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았다. 그 무렵 객석에서도 움직임이 빨라졌다. “나 먼저 갈란다.” “허리 아파 못 있겠어.” 어르신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출구로 향했고, 누군가는 접어둔 외투를 챙겨 조용히 문밖으로 나갔다. 행사 시작 당시 거의 가득 찼던 객석은 시간이 흐를수록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정작 초청가수 김혜연이 무대에 올랐을 때는 분위기가 이미 식어버린 뒤였다.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졌지만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한때 빼곡했던 의자들은 듬성듬성 빈칸만 남겼고,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행사장을 빠져나오던 한 어르신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효도공연이라더니 정작 노인들은 다 집에 갔네.” 또 다른 어르신은 “우리를 위한 행사라기보다 높은 사람들 얼굴 비추는 행사 같았다”며 “말은 효(孝)인데 실제로는 노인들이 제일 고생했다”고 꼬집었다. 

 

가평에서는 이런 모습이 행사장 마다 반복되는 ‘내빈 소개 문화’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주민들은 “행사만 열면 주민보다 기관장 소개가 먼저고, 축사만 길어진다”며 “주인공보다 의전이 앞서는 낡은 행사 문화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 남은 것은 ‘효’를 외친 현수막과, 빈 의자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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