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를 굳이 ‘여성’으로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편하게 대해 주세요.”
가평신협의 '대모' 최윤주 전무, 30년 전 대학을 중퇴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 든 그녀는 주경야독 끝에 대학을 마쳤다. 그리고 찾아온 '암과의 사투', 하지만 신협 발전을 견인하며 대학원 석사학위에 이어 박사 과정에 도전하고 있다.[사진=정연수 기자]
보수적 색채가 짙은 경기 가평. 기관·단체장 대부분이 남성인 지역 사회에서 30년을 버텨낸 한 인물이 있다. 가평신협 ‘대모’로 불리는 최윤주 전무다. 그러나 그는 ‘여성 리더’라는 수식어보다 “그냥 조합원들과 함께 성장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100억도 안 되던 시절…맨손으로 시작한 30년
1995년, 가평신협 자산은 100억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직원은 6명 남짓. 손님이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최 전무는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돈을 벌어야 했다.” 신협 원서 접수도 부모님이 대신했다.
입사 초기 3년은 ‘야전’이었다. 지금처럼 온라인 이체가 없던 시절, 직접 상가를 돌며 현금을 수금했다. 하루 3천만~4천만 원을 들고 다니던 날도 있었다. 통장은 수기로 기장했다. 금융이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30년. 지금 가평신협 자산은 2,2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단순한 숫자의 확대가 아니라, 지역과 함께 커온 시간의 축적이었다.
“여자라서”가 아닌 “진심이라서”
가평은 여전히 보수적인 지역이다. 그는 종종 “여자 전무라서 더 눈에 띄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늘 같은 답을 한다. “저를 여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불편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성 중심 조직에서 살아남는 비결을 묻자 그는 의외로 단순한 답을 내놓았다. “의도를 갖고 하면 사람들은 다 압니다. 진심이면 결국 통합니다.” 조합원들은 여전히 그를 “윤주야”라고 부른다. 아이를 낳았을 때 친손주처럼 기뻐해 준 어르신들, 힘든 일이 생기면 먼저 찾아오는 이웃들. 그는 직함보다 ‘관계’를 자산으로 쌓아왔다.
최윤주 전무가 24일 경영 투명성과 건전성 공로를 인정받아 금융감독원장 표창을 수상했다.
‘금융을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
가평신협은 단순 금융기관을 넘어섰다. 여행 인터넷 발권을 도와주고 ARS 자동이체를 대신 연결해주며 기초연금 계좌이동 서비스까지 안내한다. “금융업무가 아니지만, 조합원에게 필요하면 해야죠.” 요구불 예금 비율 20% 유지, 모임계좌 연계 여행 프로그램, 쏠라티 차량을 활용한 하루 나들이, 파크골프 동호회 창단, 문화센터 활성화….
그는 신협을 “지역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얼마전 금융감독원장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직원들이 잘해서 대표로 받은 상”이라고 말한다.
‘암 수술 이후, 인생의 전환점’
그의 인생은 한 번의 수술로 방향을 틀었다. 대장암 수술 이후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경야독. 신협 MBA 과정을 차석으로 수료하고 중앙회장 표창을 받았다. 경영학 석사를 마쳤고, 사회복지 분야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다. “조합원들이 고령화되고 있어요. 복지와 금융을 같이 가야 합니다.” 금융을 넘어 복지경영으로. 그의 시선은 이미 다음 단계에 가 있다.
집에 가면 다시 ‘엄마’
밤 12시가 돼서야 하루가 끝난다. 회식과 외부 일정,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또 다른 출근이 시작된다. 그는 “집에 가는 걸 다시 출근이죠.”라며 환하게 웃는다. 빨래, 청소, 정리. 부모님의 도움 속에 아이를 키웠고, 지금은 스스로 길을 찾는 자녀를 둔 엄마다. 그는 말한다. “몸은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하는 일은 병을 부르는 스트레스와는 다릅니다.”

다음 목표는 ‘설악 지점 진출’
가평군 내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은 설악. 그는 장기적으로 설악 진출을 꿈꾼다. “내부 재무구조를 더 단단히 다지고, 그다음 단계로 가야죠.” 신협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한다.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조합원과 군민은 그를 두고 ‘여장부’라 부른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고개를 젓는다. “저는 그냥 처음 창구에서 일하던 그 마음 그대로입니다.” 100억도 안 되던 시절부터 2,200억 원까지. 외근 직원에서 전무까지.무엇보다 환자에서 박사과정 도전자까지.
그의 30년은 직위 상승의 기록이 아니라,‘사람을 향한 금융’의 시간이었다. 가평신협의 성장 뒤에는 한 여성의 투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진심이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전화가 왔다. “아~`아버님 어디 편찮으신 덴 없으시죠?”. 기자는 어르신 조합원과의 대화를 마치 친정 부모님으로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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