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척·청주·제주·경북 사례가 보여준 ‘수요·운영’의 경고등
18일 ‘가평군 영상미디어센터’와 ‘자라섬 워케이션센터’ 개관식을 열고 “가평이 미래형 콘텐츠 산업과 원격근무 문화의 중심지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서태원 가평군수와 양재성·최원중 군의원, 유관기관 관계자, 주요 관광지 대표 등이 참석해 센터 개관을 축하했다.[사진/가평군 제공]
가평군이 영상미디어센터와 자라섬 워케이션센터를 동시에 열며 “미래형 콘텐츠 산업과 원격근무 중심지 도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미 전국 여러 지자체가 비슷한 사업을 앞서 추진한 가운데, 수요 부진과 운영 난항을 겪고 있는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어 “전국 유행을 그대로 따라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뒤따른다.
삼척·청주·진안… 고향올래 워케이션 ‘줄줄이 선정된’ 지자체들
가평군 자라섬 워케이션센터는 행정안전부 ‘고향올래(GO鄕All來)’ 워케이션 분야 공모를 통해 특별교부세 5억 원을 확보해 조성됐다. 고향올래는 2023년부터 추진 중인 체류형 생활인구 확보 사업으로, 2025년까지 강원 삼척시, 충북 청주시, 전북 진안군 등이 워케이션 분야 지자체로 선정돼 개소당 최대 10억 원 수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들 선행 지자체의 성과가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산림휴양림·농촌 체험시설 등을 워케이션 거점으로 꾸민 일부 지역은 “시설은 갖췄지만 반복 방문 수요가 약하다”, “비수기에는 거의 텅 비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힐링·치유형 워케이션·농촌유학 거점’을 내세운 충남 금산군 등도, 지역경제 성과보다 “관광·체험시설 또 늘린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가평군 역시 ‘고향올래+캠핑장’ 조합이라는 익숙한 모델을 택하면서,▶ 어떤 기업·직군을 타깃으로 할지 ▶ 연간 얼마의 이용객을 목표로 할지 ▶ 실패 시 어떻게 조정할지 구체적인 수요·위험 분석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부산 vs 경북… “성공 조건과 실패 조건이 이미 나와 있다”
워케이션의 명암은 이미 전국에서 엇갈리고 있다. 제주도는 공유오피스 기반 워케이션 공간을 운영하며, 전용 브랜드 개발·시설 인증제·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인센티브까지 묶어 기업 대상 인센티브 패키지를 설계했다.
워케이션 참가 기업에 봉사활동·환경 활동을 연계하면 기업 평가에 도움 되는 구조까지 마련해 ‘기업이 굳이 제주를 선택할 이유’를 제도적으로 만든 셈이다.
부산시는 호텔·도심 거점 오피스를 활용해 5곳의 워케이션 거점센터를 구축, 교통·도시 인프라와 결합한 ‘도심형 워케이션’ 모델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경북도는 의성·경주·문경·포항 등 4곳에 5억 원을 들여 ‘개별형 워케이션’ 상품을 출시했지만, 4개월 간 이용객이 382명(하루 평균 3.1명)에 그치며 수요 부진을 드러냈다. 포항·문경은 이용객이 ‘0명’인 채로 사업이 진행됐다. 또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에서는 이미 “실적·수요 검토 없이 워케이션 예산을 편성해 홍보비만 쓰고 사업을 접는 것은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가평이 참고해야 할 것은 ‘센터 개수 경쟁’이 아니라, 제주처럼 기업 대상으로 명확한 인센티브 구조를 갖추거나, 경북처럼 수요를 과대평가한 채 시설부터 짓는 오류를 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국 30여 개 영상미디어센터… 공통된 딜레마는 ‘예산·전문 인력’
영상미디어센터 역시 가평만의 새로운 발상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지자체 지원으로 전국에는 이미 30여 개의 지역 영상미디어센터가 운영 중이며, 시청자미디어센터·지역영상미디어센터 등 이름만 다른 유사 시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센터의 공통적인 고민은 ▲지자체 예산에 대한 높은 의존도 ▲전문 인력 부족·비정규직 중심 인력 구조 ▲장비 노후화에 따른 지속적 투자 부담 ▲지역 시민·청년의 참여 기반 약화 등이다.
익산 지역 미디어센터 설립 논의를 다룬 사례 연구에서는 “추진주체가 장기 계획 없이 운영계획서를 짜깁기하고 행정 협약만으로 센터를 밀어붙이면서, 설립 목적과 지역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가평 영상미디어센터가 XR·유튜브 스튜디오를 갖춘 것 자체는 의미 있지만, 운영 예산과 인력 구조, 지역 창작자 생태계와의 연결 전략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장비 많은 동아리방” 수준에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국 유행 따라가기에서 ‘가평형 모델’로 갈 수 있나”
가평군의 이번 투자는 분명 지역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미 전국의 워케이션·미디어센터 사업이 보여주듯, 시설 개관만으로는 생활인구 증가도, 콘텐츠 산업 육성도 담보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우리도 하나 있다’는 인증샷이 아니라, 3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평형 운영모델이다. 가평군이 전국 유행을 뒤따르는 데서 그칠지, 아니면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모델을 만들지,지금이 갈림길이다.
가평군이 영상미디어·워케이션이라는 두 축을 “두 마리 토끼”가 아닌 “두 개의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로 키울 수 있을지,답은 이제 장기 운영 전략과 공개 검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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