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농업인의 날에 만난 감동적인 펄벅(Pearl Buck) 스토리”

소달구지를 끄는 소를 존귀하게 여겼던 배려심 깊은 대한민국 농부의 모습에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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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N뉴스 김희경 기자 | 기사입력 : 2019.11.1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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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3.jpg


[패트롤=NGN뉴스] 김희경 기자  


오늘 1111일은 제24회 농업인의 날이다.

그러나 온 나라가 빼빼로 데이라고 난리를 치고 있다.

 

우리의 자급자족 식량인 먹거리의 날인 농업인의 날인데 족보에도 없던 빼뻬로 데이가 모 기업의 상업성 마케팅 홍보 전략에 밀려 우리 고유의 농업인의 날이 퇴색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이 날 전쟁이 끝나고 고단했던 때, 대한민국의 소달구지를 끄는 농부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 세계적인 작가 펄벅의 소토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널리 알려진 펄벅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펄벅2.jpg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1960년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황혼의 경주 시골길을 지나고 있는데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다.달구지에는 가벼운 짚단이 조금 실려 있었지만 농부는 자기 지게에 따로 짚단을 지고 있었다.

 

합리적인 서양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하게 볼 광경이었다. 힘들게 지게에 짐을 따로 지고 갈 것이 아니라 달구지에 짐을 싣고 농부도 타고 가면 편했을 것이다.

 

통역을 통해 펄 벅이 물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을 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했으니 짐을 서로 나누어 져야지요."

 

펄 벅은 감탄하며 말했다.

"나는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소의 짐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비록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존귀하게 여겼던 농부처럼 우리는 본디 배려를 잘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사고로 꽉 차 있지는 않은가?

펄 벅이 만난 시골 농부의 이야기는 배려를 잃어버린 지금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펄 벅(Pearl Buck,1892~1973)여사는 중국 땅을 배경으로 한 소설 '대지 (The Good Earth)'를 썼다. 평이한 문체와 동양적 세계관으로 스토리 전개의 흥미로움이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가정사는 매우 불우했다. 가족에게 무심한 남편에게 실망한 펄 벅 여사는 딸 캐럴이 태어나자 정성을 쏟아 양육에 온 힘을 다 쏟았다.

 

딸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펄벅 여사는 무관심한 남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펄 벅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살이 되도록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의 딸은 발달장애아였던 것이다. 다급히 아이와 함께 중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와 유명한 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펄벅4.jpg


그녀는 그 절망감에 오랜 기간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숨겨오다가 예순이 다 되어서야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가 1950년에 발간한 '자라지 않는 아이'(The child who never grew) 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에서 펄벅 여사는 아이의 상태를 알게 된 순간의 절망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 내 아이가 영원히 어린아이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내 마음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피할 수 없는 슬픔을 당했을 때 사람들이 내지르는 해묵은 원망의 소리였습니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였습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차라리 내 아이가 죽었으면 하는 무서운 생각을 하며 울었습니다" 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아이로 인해 받는 자신의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이 아이의 장래를 위한 걱정이 더 컸다.

그래서 아이가 죽은 후에는 그 아이는 더 이상 죽음 없이 고통 없이 영원히 편히 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이어 일어나는 또 다른 하나의 생각은 자신이 먼저 죽고 나면 이 아이가 살아갈 공간과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펄벅 여사는 글을 써서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번 돈 대부분은 아이가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데 들어갔다.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누구한테도 신세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으로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는 생각을 하면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펄 벅 여사의 글은 살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대부분 중국에 살며 실제로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대지', '어머니의 초상', '동풍, 서풍', '아들들', '분열된 일가', '싸우는 천사'등이 그렇게 탄생했다.

딸의 발달장애는 그녀에게 절망과 함께 명작을 남길 기초가 되어주기도 했던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愛人(사람을 배려)하고

 

동물을 아끼고

초목들을 소중히 키우는

사람은 이미 聖者이다.

 

한 쪽으로만 치우쳤다면

그는 이미 眞人이 아닌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지키며 사는 대한민국의 농민 만세다~ 

오늘 농업인의 날, 그대가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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