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포천 전역 강풍 특보… 용정산단 앞 10m 대형 현수막 끊어져 ‘아찔’
- 휴일 점심시간 공백 메운 시민안전과장의 긴급출동, 이것이 ‘적극행정’

1월 10일 오전, 포천시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사나운 기세로 울어댔다.
"삐- 삐-"
정적을 깨고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전 내내 포천시청과 경기도청에서 연달아 발송한 재난안전문자였다. ‘시설물 낙하 주의’, ‘야외활동 자제’, ‘간판·비닐하우스 피해 우려’. 문자의 내용만큼이나 창밖의 바람은 매서웠다.
43번 국도를 따라 점심 무렵 찾은 신읍동 시내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강풍에 뜯겨져 나온 낙엽과 정체 모를 쓰레기들이 도로 위를 뒹굴며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임을 실감케 했다.
사건은 정오를 갓 넘긴 12시 30분경 발생했다. 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기자의 휴대전화가 다급하게 울렸다. 수화기 너머 제보자의 목소리는 잔뜩 긴장돼 있었다.
"여기 용정산업단지 로제비앙 아파트 앞인데요, 대형 현수막이 끊어져서 도로를 덮치기 일보 직전입니다! 빨리 좀 와보세요!"
현장은 아찔했다. 군내면사무소에서 내건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10미터가량의 초대형 현수막이 한쪽 줄이 끊어진 채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채찍처럼 도로를 향해 휘날리는 현수막은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었다. 만약 저 거대한 천 덩어리가 주행 중인 차량의 앞 유리를 덮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이날은 토요일, 게다가 공무원들이 자리를 비우는 점심시간이었다. 관할인 군내면사무소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음만 길게 이어질 뿐 응답은 없었다. 강풍은 잦아들 기미가 없었고, 현수막은 금방이라도 도로 위 차량을 집어삼킬 듯 위태로웠다.
그때, 뇌리를 스친 이름이 있었다. 포천시의 안전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 시민안전과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일선 시민안전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용정산단 쪽에 비상 상황입니다."
수화기 너머 이 과장은 지인과 막 점심 식사를 하러 이동 중이라고 했다. 휴일 점심,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전해 들은 그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바뀌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차 돌리겠습니다."
망설임은 없었다. 그는 "밥이 문제냐, 사람이 먼저다"라는 듯 지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즉시 핸들을 꺾었다.
신고 후 불과 10여 분이 지났을까. 현장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이일선 과장이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펄럭이는 대형 현수막을 붙잡았다. 넥타이를 매만질 새도 없이, 그는 능숙하고 신속하게 위험천만한 현수막을 걷어내고 도로를 정리했다.
도로를 위협하던 ‘흉기’가 안전하게 제거되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지켜보던 시민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무원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꼬집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요즘이다. ‘담당자가 없다’, ‘점심시간이다’, ‘휴일이다’라는 핑계 뒤에 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일선 과장은 밥숟가락 대신 시민의 안전을 먼저 챙겼다.
관할 구역이나 업무 분장을 따지기보다, "위험하다"는 시민의 부름에 밥 먹으러 가던 차를 돌려 달려온 그 모습. 10일 포천의 강풍 속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현수막 제거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민을 위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공직자의 살아있는 ‘적극행정’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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