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산책] 어머니의 편지, 삶의 뿌리를 읽다

  어머니의 편지 / 시인 임태주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어머니의 편지, 삶의 뿌리를 읽다 가난과 인정, 그리고 세상을 사는 지혜 임태주의 시, 어머니의 편지는 자식에게 보내는 단순한 서신이 아니다. 그것은 한 세대를 관통한 삶의 기록이자,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을 투영한 교본이다.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남긴 편지 속에는 가난과 인정, 삶의 방식에 대한 고요한 사유가 담겨 있다. 그 고된 삶의 끝에서 어머니가 남긴 깨달음은 우리가 시대를 살아가며 맺어야 할 관계의 본질과 깊이를 묵직하게 던져 준다. ▣ 삶의 허술함을 긍정하는 지혜 어머니는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고 말하며, 자식에게 서투른 글일지라도 새겨읽으라 한다. 그 말속에는 단순히 글쓰기의 어려움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서투름은 삶의 허술함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지혜다. 그녀는 자신을 학문적이거나 이성적인 성취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밭에서 돌밭을 일구며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도라지꽃이 넘실대는 것을 보며 극락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삶은 물질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성공이 아닌, 그저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데 집중해온 삶이었다. 이 시대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뜻’을 높이 세우고, 타인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다. 그러나 어머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단순히 겸손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녀는 세상이 얼마나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의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지 알고 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며" 건너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약해 보일지라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는 것을 알려준다. ▣ 욕심과 인정의 경계 편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어머니가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이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챙겨 먹일 때" 자신은 왜 그랬지 않았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는 침묵했다. 그녀는 단순히 '가난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름대로의 "인정과 도리"가 있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굶겼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어머니는 후회한다. 그 당시에는 떡 한 점이 "도리보다 더 지엄하고 존귀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일정한 윤리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욕심을 억제하고, 인정과 도덕적 기준을 고수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때로는 그 기준이 너무 높아 자신이나 타인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뒤늦게 그것을 깨닫고, 자신의 도리가 자식에게 상처를 줬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여기서 어머니는 자신이 "부박하다"고 말하지만, 그 진정성은 자식을 향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 가치의 무게와 산다는 것의 의미 편지 말미에서 어머니는 산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어머니는 세상 사는 법에 대해 깊이 있는 철학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단순하게,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상은 예상할 수 없고, 욕심을 덜어내면 삶은 봄볕처럼 허술하고 다정해진다는 그 말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사는 가장 중요한 삶의 진리일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목표를 향해 질주하며 살아가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는 정성껏 살아라"고 말하며,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편지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그 단순함과 솔직함에서 온다. 우리의 일상도 어머니의 삶처럼 소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마지막에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고 말하며 편지를 마무리한다. 이것이 그녀의 삶의 전부다. 그녀의 사랑과 인정, 그리고 도리는 더 이상 대단한 철학을 요구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 [문학산책] 어머니의 편지, 삶의 뿌리를 읽다

  어머니의 편지 / 시인 임태주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어머니의 편지, 삶의 뿌리를 읽다 가난과 인정, 그리고 세상을 사는 지혜 임태주의 시, 어머니의 편지는 자식에게 보내는 단순한 서신이 아니다. 그것은 한 세대를 관통한 삶의 기록이자,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을 투영한 교본이다.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남긴 편지 속에는 가난과 인정, 삶의 방식에 대한 고요한 사유가 담겨 있다. 그 고된 삶의 끝에서 어머니가 남긴 깨달음은 우리가 시대를 살아가며 맺어야 할 관계의 본질과 깊이를 묵직하게 던져 준다. ▣ 삶의 허술함을 긍정하는 지혜 어머니는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고 말하며, 자식에게 서투른 글일지라도 새겨읽으라 한다. 그 말속에는 단순히 글쓰기의 어려움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서투름은 삶의 허술함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지혜다. 그녀는 자신을 학문적이거나 이성적인 성취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밭에서 돌밭을 일구며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도라지꽃이 넘실대는 것을 보며 극락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삶은 물질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성공이 아닌, 그저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데 집중해온 삶이었다. 이 시대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뜻’을 높이 세우고, 타인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다. 그러나 어머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단순히 겸손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녀는 세상이 얼마나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의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지 알고 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며" 건너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약해 보일지라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는 것을 알려준다. ▣ 욕심과 인정의 경계 편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어머니가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이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챙겨 먹일 때" 자신은 왜 그랬지 않았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는 침묵했다. 그녀는 단순히 '가난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름대로의 "인정과 도리"가 있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굶겼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어머니는 후회한다. 그 당시에는 떡 한 점이 "도리보다 더 지엄하고 존귀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일정한 윤리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욕심을 억제하고, 인정과 도덕적 기준을 고수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때로는 그 기준이 너무 높아 자신이나 타인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뒤늦게 그것을 깨닫고, 자신의 도리가 자식에게 상처를 줬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여기서 어머니는 자신이 "부박하다"고 말하지만, 그 진정성은 자식을 향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 가치의 무게와 산다는 것의 의미 편지 말미에서 어머니는 산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어머니는 세상 사는 법에 대해 깊이 있는 철학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단순하게,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상은 예상할 수 없고, 욕심을 덜어내면 삶은 봄볕처럼 허술하고 다정해진다는 그 말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사는 가장 중요한 삶의 진리일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목표를 향해 질주하며 살아가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는 정성껏 살아라"고 말하며,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편지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그 단순함과 솔직함에서 온다. 우리의 일상도 어머니의 삶처럼 소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마지막에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고 말하며 편지를 마무리한다. 이것이 그녀의 삶의 전부다. 그녀의 사랑과 인정, 그리고 도리는 더 이상 대단한 철학을 요구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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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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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산책] 어머니의 편지, 삶의 뿌리를 읽다

  어머니의 편지 / 시인 임태주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어머니의 편지, 삶의 뿌리를 읽다 가난과 인정, 그리고 세상을 사는 지혜 임태주의 시, 어머니의 편지는 자식에게 보내는 단순한 서신이 아니다. 그것은 한 세대를 관통한 삶의 기록이자,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을 투영한 교본이다.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남긴 편지 속에는 가난과 인정, 삶의 방식에 대한 고요한 사유가 담겨 있다. 그 고된 삶의 끝에서 어머니가 남긴 깨달음은 우리가 시대를 살아가며 맺어야 할 관계의 본질과 깊이를 묵직하게 던져 준다. ▣ 삶의 허술함을 긍정하는 지혜 어머니는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고 말하며, 자식에게 서투른 글일지라도 새겨읽으라 한다. 그 말속에는 단순히 글쓰기의 어려움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서투름은 삶의 허술함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지혜다. 그녀는 자신을 학문적이거나 이성적인 성취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밭에서 돌밭을 일구며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도라지꽃이 넘실대는 것을 보며 극락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의 삶은 물질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성공이 아닌, 그저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데 집중해온 삶이었다. 이 시대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뜻’을 높이 세우고, 타인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다. 그러나 어머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단순히 겸손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녀는 세상이 얼마나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의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지 알고 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며" 건너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약해 보일지라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는 것을 알려준다. ▣ 욕심과 인정의 경계 편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어머니가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이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챙겨 먹일 때" 자신은 왜 그랬지 않았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는 침묵했다. 그녀는 단순히 '가난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나름대로의 "인정과 도리"가 있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굶겼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어머니는 후회한다. 그 당시에는 떡 한 점이 "도리보다 더 지엄하고 존귀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일정한 윤리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욕심을 억제하고, 인정과 도덕적 기준을 고수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때로는 그 기준이 너무 높아 자신이나 타인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뒤늦게 그것을 깨닫고, 자신의 도리가 자식에게 상처를 줬음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여기서 어머니는 자신이 "부박하다"고 말하지만, 그 진정성은 자식을 향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 가치의 무게와 산다는 것의 의미 편지 말미에서 어머니는 산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어머니는 세상 사는 법에 대해 깊이 있는 철학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단순하게,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상은 예상할 수 없고, 욕심을 덜어내면 삶은 봄볕처럼 허술하고 다정해진다는 그 말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사는 가장 중요한 삶의 진리일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경쟁하고, 목표를 향해 질주하며 살아가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는 정성껏 살아라"고 말하며,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편지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그 단순함과 솔직함에서 온다. 우리의 일상도 어머니의 삶처럼 소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마지막에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고 말하며 편지를 마무리한다. 이것이 그녀의 삶의 전부다. 그녀의 사랑과 인정, 그리고 도리는 더 이상 대단한 철학을 요구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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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