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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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강의 눈물! M&A 전문가의 두 얼굴!
            [경기도 가평군 고성리 북한강, 5년 전부터 초 대형 수상레저 C 업체 전경, 강 건너 다리 밑에 더 큰 규모의 레저 시설도 회장 B 씨의 소유이다]   B.G *캠프 통 밑그림  *타자 치는 소리에/ 녹취록 중 (피치 변환 처리, 자막 자구)*군청 화염병 던져라(군청) *뼈를 부러뜨려라 *집 찾아가 협박    *타이틀 북한강의 눈물! M&A 전문가의 두 얼굴!   기자 리포트/ "가평군청에 '화염병'을 던져라, 공무원을 '폭행, 뼈'를 부러뜨려라, 야심한 시간에 공무원 집까지 찾아가 허가를 내달라며 '욕설과 협박'... 그래도 안 되면 '집에 방화'해라"....    조폭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 목소리는 경기도 가평군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로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왜? 군청에 불을 지르고 관계 공무원을 뼈가 부러질 정도로 폭행 하라고 시키는 것일까?   말만 들어도 섬뜩한 범죄를 실행에 옮기라고 윽박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전화기를 타고 나오는 그 목소리에 주인공은 누구인가? 지금부터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범죄를 교사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캠프 통 불법 영상(경기 인터넷 뉴스 자료)    [가평군 사룡리에 있는 초 대형 리조트 P 업체, 고성리 소재 C 사와 소유자 A 씨의 소유이다)   1년 전인, 2019년 4월 8일, 가평군 고성리와 사룡리 북한강 일대에서 불법을 일삼고 있는 초대형 수상레저 업체의 문제점들이 보도를 통해 지적되었습니다.    허가도 받지 않고 초대형 선박으로 바지선을 만들고 고급 호텔을 방불케 하는 시설의 글램핑장, 유선상에서 편법으로 식당 영업을 하는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가평군청    가평군청은 원상복구 명령과 함께 해당 업체를 사법당국에 고발했고, 보도가 나가자 경기북부지방청 광역수사대가 관련 서류 등을 압수 수색해 1년 넘게 수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가평군청   그리고 가평군청 관련 부서는 이 업체의 바지선 증축 허가 신청을 반려하였고 영업허가도 불허했습니다.   *캠프 통 드론   그러자 당시 이 업체 서류상 대표.. 이른바 바지사장 A 씨는 허가를 받기 위해 50여 일을 가평군청을 떠나지 않고 초주검 상태가 되어 관계 부서를 찾아다니며 애원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러는 사이, 수상레저 사업 성수기는 다가오고... 허가증은 나오지 않고... 다급해진 이 업체 실질적 소유자인 B 씨는 바지사장 A 씨에게 허가증을 받아 내기 위해 각종 범행을 지시합니다.   가장 먼저 택한 방법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범행을 지시합니다.   다름 아닌 담당 공무원을 폭행해 뼈를 부러뜨리라는 말이었습니다.    *뼈를 부러뜨려라    이 수상레저 업체 회장 B 씨는 군청에 화염병 투척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화염병 투척을 독려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업체 회장은 또 다른 범행…. 군청에 화염병 투척을 바지사장에게 요구합니다.   *화염병 투척   회장 B 씨의 범행은 공무원 집을 찾아가 위협까지 하라고 지시합니다. 회장 지시를 받은 A 씨는 실제로 공무원 집을 찾아가 협박을 했습니다.    *집 찾아가 욕설 등    회장 B 씨는 특히, 바지사장 A 씨에게 범행을 진짜로 실행에 옮기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스피커 폰으로 켠체 범행을 지시했고, 공무원 집을 찾아가 협박하는 소리까지 모두 듣고 있었습니다. 범행이 끝난 후 B 씨는 회장 A 씨에게 직접 들으셨지요? 라는 확인 전화를 했고, 보고를 받은 회장은 대체로 만족하다며 또 다른 지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바지사장 A 씨. 범행 지시 녹취    자신의 실체는 드러내지 않고 뒤에 숨어서 바지사장을 내세워 온갖 불법을 지시하는 영업 수법으로 바지사장들 모두를 전과자로 만들었습니다.    *전과자로 만들었다(녹취)    지난 2015년에 문을 연 이 업체 회장에 고용되었던 바지사장 4명 모두 집행유예 등의 형을 받았습니다.   업체 회장의 지시로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가평군은 인, 허가를 불허했습니다.   그러나 이 업체는 지난해 여름 불법 영업으로 불과 석 달 만에 100억 여 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회장 B 씨는 M&A의 귀재자 동종 업계 큰손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평소에도 직원 폭행 등 갑질 행위로 손가락질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종 범죄 행위로 뉴스를 장식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B 씨가 5년 전부터 청정한 북한강을 잠식하면서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NGN 뉴스에서는 이번 한 주간 이 업체의 각종 비리와 한국수력원자력 발전소와 원주지방국토관리청 가평군청 관계자들과의 의심되는 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고발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NGN 뉴스 정연수입니다.  
    • 가평뉴스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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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강의 눈물! M&A 전문가의 두 얼굴!
            [경기도 가평군 고성리 북한강, 5년 전부터 초 대형 수상레저 C 업체 전경, 강 건너 다리 밑에 더 큰 규모의 레저 시설도 회장 B 씨의 소유이다]   B.G *캠프 통 밑그림  *타자 치는 소리에/ 녹취록 중 (피치 변환 처리, 자막 자구)*군청 화염병 던져라(군청) *뼈를 부러뜨려라 *집 찾아가 협박    *타이틀 북한강의 눈물! M&A 전문가의 두 얼굴!   기자 리포트/ "가평군청에 '화염병'을 던져라, 공무원을 '폭행, 뼈'를 부러뜨려라, 야심한 시간에 공무원 집까지 찾아가 허가를 내달라며 '욕설과 협박'... 그래도 안 되면 '집에 방화'해라"....    조폭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 목소리는 경기도 가평군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로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왜? 군청에 불을 지르고 관계 공무원을 뼈가 부러질 정도로 폭행 하라고 시키는 것일까?   말만 들어도 섬뜩한 범죄를 실행에 옮기라고 윽박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전화기를 타고 나오는 그 목소리에 주인공은 누구인가? 지금부터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범죄를 교사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캠프 통 불법 영상(경기 인터넷 뉴스 자료)    [가평군 사룡리에 있는 초 대형 리조트 P 업체, 고성리 소재 C 사와 소유자 A 씨의 소유이다)   1년 전인, 2019년 4월 8일, 가평군 고성리와 사룡리 북한강 일대에서 불법을 일삼고 있는 초대형 수상레저 업체의 문제점들이 보도를 통해 지적되었습니다.    허가도 받지 않고 초대형 선박으로 바지선을 만들고 고급 호텔을 방불케 하는 시설의 글램핑장, 유선상에서 편법으로 식당 영업을 하는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가평군청    가평군청은 원상복구 명령과 함께 해당 업체를 사법당국에 고발했고, 보도가 나가자 경기북부지방청 광역수사대가 관련 서류 등을 압수 수색해 1년 넘게 수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가평군청   그리고 가평군청 관련 부서는 이 업체의 바지선 증축 허가 신청을 반려하였고 영업허가도 불허했습니다.   *캠프 통 드론   그러자 당시 이 업체 서류상 대표.. 이른바 바지사장 A 씨는 허가를 받기 위해 50여 일을 가평군청을 떠나지 않고 초주검 상태가 되어 관계 부서를 찾아다니며 애원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러는 사이, 수상레저 사업 성수기는 다가오고... 허가증은 나오지 않고... 다급해진 이 업체 실질적 소유자인 B 씨는 바지사장 A 씨에게 허가증을 받아 내기 위해 각종 범행을 지시합니다.   가장 먼저 택한 방법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범행을 지시합니다.   다름 아닌 담당 공무원을 폭행해 뼈를 부러뜨리라는 말이었습니다.    *뼈를 부러뜨려라    이 수상레저 업체 회장 B 씨는 군청에 화염병 투척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화염병 투척을 독려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업체 회장은 또 다른 범행…. 군청에 화염병 투척을 바지사장에게 요구합니다.   *화염병 투척   회장 B 씨의 범행은 공무원 집을 찾아가 위협까지 하라고 지시합니다. 회장 지시를 받은 A 씨는 실제로 공무원 집을 찾아가 협박을 했습니다.    *집 찾아가 욕설 등    회장 B 씨는 특히, 바지사장 A 씨에게 범행을 진짜로 실행에 옮기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스피커 폰으로 켠체 범행을 지시했고, 공무원 집을 찾아가 협박하는 소리까지 모두 듣고 있었습니다. 범행이 끝난 후 B 씨는 회장 A 씨에게 직접 들으셨지요? 라는 확인 전화를 했고, 보고를 받은 회장은 대체로 만족하다며 또 다른 지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바지사장 A 씨. 범행 지시 녹취    자신의 실체는 드러내지 않고 뒤에 숨어서 바지사장을 내세워 온갖 불법을 지시하는 영업 수법으로 바지사장들 모두를 전과자로 만들었습니다.    *전과자로 만들었다(녹취)    지난 2015년에 문을 연 이 업체 회장에 고용되었던 바지사장 4명 모두 집행유예 등의 형을 받았습니다.   업체 회장의 지시로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가평군은 인, 허가를 불허했습니다.   그러나 이 업체는 지난해 여름 불법 영업으로 불과 석 달 만에 100억 여 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회장 B 씨는 M&A의 귀재자 동종 업계 큰손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평소에도 직원 폭행 등 갑질 행위로 손가락질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종 범죄 행위로 뉴스를 장식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B 씨가 5년 전부터 청정한 북한강을 잠식하면서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NGN 뉴스에서는 이번 한 주간 이 업체의 각종 비리와 한국수력원자력 발전소와 원주지방국토관리청 가평군청 관계자들과의 의심되는 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고발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NGN 뉴스 정연수입니다.  
    • 가평뉴스
    2020-05-11
  • 가평, 포천, 남양주 상생협력의 길 찾았다!
      [가평.포천.남양주=NGN뉴스] 정연수 기자 = 가평군, 포천시, 남양주시 3개 시∙군은 8일 가평군청 대회의실에서 3개 시∙군 주민 90만명이 공동이용할 수 있는 화장장 공동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재 3개 시∙군 화장률은 90%에 육박하고 있으나, 화장장이 전무한 관계로 타 시군으로 원정화장을 다니는 실정이다.   우스갯소리로 “저승길이 너무 멀다”라는 주민들의 볼멘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터져 나왔다.   그간, 공동(광역) 화장장 건립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님비현상으로 공동(광역)화장장 건립은 매번 난항을 겪어왔다.   박윤국 포천시장은 인사말에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간 김성기 가평군수님이 뚝심있게 추진해온 공동(광역)화장장 건립사업이 결실을 맺게 돼 기쁘다.”며 “오늘의 결과를 이끌어낸 군수님과 가평군 관계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가평군에서 추진하는 이번 공동(광역) 화장장 건립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시 차원에서 적극적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포천시 이일선 노인장애인과장은 “포천시 시민들의 화장장 이용현황은 고양(승화원) 42.3%, 성남(영생원) 36.2%, 춘천(안식원) 4.1% 순이며 예약관계가 여의치 않으면 속초나 인제까지 원정 화장을 간다.”고 말했다.   또한, “비용측면에서도 고양(관내12만원/관외100만원), 성남(관내5만원/관외100만원), 춘천(관내7만원/관외70만원)이며, 포천시민은 화장장 해당 지자체 주민(관내)보다 원거리 원정화장은 물론 훨씬 많은 경제적 부담까지 감수해야 했다.”고 말했다.   한편, 가칭 가평공동화장장 건립사업은 3개 시∙군 양해각서(MOU)체결을 시작으로 장사시설 건립추진위원회 구성, 후보지 공모, 타당성 조사실시, 건립지 결정 등 일련의 절차를 거쳐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건립비는 약 510억원으로 추산되며, 2026년 4월 준공이 목표다.   시 관계자는 “가평 공동(광역) 화장장 건립으로 시민들의 부담을 크게 덜고, 양질의 선진장사서비스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가평뉴스
    2020-05-08
  • 36년 간 자전거와 동거 동락하는 장인(匠人)
    [김희경이 만난사람(12)=NGN뉴스] 삼천리 자전거 박주선 대표       [김희경이 만난사람(12)=NGN뉴스] 1950년대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처절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사는 것이 좋아져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당시만 해도 먹는 것이 최고의 화두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삼천리 자전거 박주선 대표는 아홉 살 때 머슴으로 남의 집에서 살며 주인집의 일을 도왔다. 5남매의 3째로 태어난 박대표는 어린나이 때부터 중풍을 앓던 부모님을 대신해 일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동시에 중풍을 앓아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자연스럽게 집안의 가장이 되어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집안을 도왔다.   수년간 머슴 생활을 하면서 기술을 배워야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박대표는 자전거 상회에 무급으로 입사해서 기술을 배우며 열심히 일했다.   타고난 성실성을 인정받은 그는 15살이 되어서 한 달에 2만원을 받는 사원이 되었다. 이후 자전거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수년이 지나자 그는 자전거 전문가가 되어 주위에서 자전거 장인으로 통했다. 자연스럽게 손님도 많아졌다. 2만원이던 월급은 시간이 가면서 더욱 많아졌다. 찾는 사람역시 증가해 영월 시골에서 춘천으로 자리를 옮겼다.     춘천에서 둥지를 틀다   춘천은 영월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회적인 인프라가 넘쳤다. 인구도 많고 사람도 많으니 박대표는 더욱 실력을 인정받아 월급은 계속 올라갔으며 보람도 많았다.   자전거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박대표는 타고난 성실성과 고객과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어서 한 번 찾은 사람은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위사람들은 말한다.   바쁠 때를 제외하고 박대표는 작은 일이라도 솔선수범해서 고객의 편의를 위해 일한다. 자전거 바람을 직접 넣어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보통 자전거 바람은 고객이 직접 넣는데 그는 시간이 허락할 때에는 직접 바람을 넣어준다.   사소한 것에 감동한다는 말도 있듯이 그는 자연스럽게 고객의 눈에 맞춰 살가움으로 서비스를 해 주니 자연히 단골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뛰어 놀 때 돈을 벌어야 했지만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살아왔기에 고객들에게 조금이라도 잘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남이섬 직원으로 일하다   이러한 고객감동 서비스에 기술력까지 갖췄으니 도처에서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박대표의 성실성을 지켜 본 지인이 남이섬에 소개를 해서 14년간 직원으로 일했다.   남이섬에 근무할 때도 자전거 수리와 대여를 하는 업무를 했다. 자전거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던 터라 순조롭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남이섬은 낭만이 있었어요.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음식을 먹으며 축구와 배구도 하고 보물찾기도 하는 등 색다른 경험을 했지요. 또한 카세트를 틀어놓고 고고춤을 추는 등 생동감 넘치는 시절이었어요.”   박대표는 조금은 불편해도 사람냄새가 나는 그 당시가 그립다고 한다. 당시에는 용추계곡을 비롯해 백둔리와 도대리 등 계곡에 수많은 사람들이 놀러 와서 천렵을 하기도 하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삼겹살도 구워먹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삼천리 자전거 사장이 되다   14년간 남이섬에서 직원으로 일한 그는 또 하나의 변신을 꾀했다. 바로 청평에 있는 삼천리 자전거 사장이 된 것이다. 평생 자전거 일만 해 온 장인으로 당연한 변신인 것이다.   9살 어린 나이로 머슴을 살던 박대표의 또 다른 인생승진인 것이다. 남이섬 직원으로 일 할 때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일을 했는데 내 사업을 한다는 것은 내각 직접 경영활동을 할 수 있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지만 어떤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경영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장이 되었어도 고객의 자전거에 직접 바람을 넣어주고 있다. 고객만족의 성실성이 오랫동안 체화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고객입장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기존의 상식을 좋은 쪽으로 지향하는 그의 경영 처세술은 고객과의 친밀감을 유지하는데도 좋을 뿐만 아니라 매출로도 연결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매 주 1만 명 이상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가평지역을 방문해서 식당이나 마트 등 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토요일과 일요일만 전철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도록 방침을 바꾸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지 못해 가평경기가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 매우 아쉽다고 말한다.   어느 한 분야에서 3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종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박주선 대표는 올곧게 자전거 분야에 한 우물을 판 자전거의 산 증인이 아닐 수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인생 2막에는 남들처럼 낚시도 하고 여행도 하며 여유를 갖고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토로했다. 박대표가 뜻하는 모든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19-11-26
  • “자동차를 이용한 발전장치로 특허 받은 농군”
       [김희경이 만난사람[11] - 윤광영 농촌지도사]        [김희경이 만난사람(11)=NGN뉴스] 세계적인 발명은 예리한 관찰에서부터 시작 된다는 말이 있다. 사물의 역학적인 반응과 결과를 사전에 예측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에스컬레이터 역회전으로 인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중량에 의한 역회전’에 힌트를 얻은 가평의 한 농부 윤광영씨가 “자동차 중량을 이용한 발전장치(GENERATOR USING VEHICLE WEIGHT)”로 대한민국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받았다.   윤광영씨가 에스컬레이터 사고를 보고 주목한 것은 ‘중량’이었다.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났을 때 역회전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 사람 몸무게로 인해 역회전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시작은 사고로 인해 사람들이 부상을 입는 것이 안쓰러워 원인을 생각하다가 중량에 의해 역회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관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후 그는 틈틈이 농사 일을 하면서 30대부터 꾸준히 생각하고 있던 에너지에 ‘중량’을 접목하게 되었다.   그는 30대부터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에너지를 통해 움직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얻을 수 있는 힘(力)인 수력, 화력, 풍력, 원자력은 모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환경에 무해한 전력(電力)을 생산해 보자는, 약간은 무모할지 모르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백열전구, 축음기, 영사기 등을 발명한 세기의 발명왕 에디슨도 학교를 3개월밖에 다니지 못한 낙제생이었으며,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발명왕이 되었듯이 포기만 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 노력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중량(Weight)=에너지(Energy)     그는 그 날부터 중량(Weight)=에너지(Energy) 라는 생각으로 중량을 통해 에너지, 즉 전력을 얻는 방법에 몰두했다.   볍씨를 뿌릴 때도, 벼에 농약을 칠 때도, 벼를 심고 베는 순간에도, 그는 중량을 통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전거의 톱니바퀴가 체인에 의해서 동력이 전달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집으로 돌아 온 그는 못 쓰는 자전거를 뜯어서 체인을 달아 컨베어 시스템을 만들어 돌려가며 동력전달 방법을 실험했다. 그러 던 중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 필이 꽂혔다.       특허청으로부터 자동차 중량을 이용한 발전장치로 특허를 받다     아무 생각 없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 있는데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아이디어, 곧바로 자동차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에스컬레이터의 경우에는 사람의 무게로 역회전이 된다고 가정할 때 사람대신 자동차의 중량으로 에너지인 전력을 생산한다는 이론이다.   그의 이론을 간단히 설명해 보면 “경사진 도로에 무빙워크를 설치하여 무빙워크 위에 정차한 자동차의 중량으로 무빙워크를 움직여서 그 회전력으로 전기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무빙워크가 설치되는 길이가 예를 들어 2km 이고, 도로에 100여대의 자동차가 내려온다고 가정하면 100톤의 무게가 되는데, 100톤의 무게라면 원자력 발전소 하나를 돌릴 수 있는 전력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볼 때는 추상적인 이론으로 과연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윤광영씨는 발전장치 이론으로 대한민국 특허청으로부터 명실공히 특허(특허 제 10-1288235)를 받았다.   특허청의 특허를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허를 받기 위한 이론이 논리정연하게 전개되어야 하며, 그 결과 치 역시 특허를 받기 위한 이론에 부합되는 합리적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20년 동안 농사를 업으로 종사해 오고 있는 윤광영씨는 “자동차 중량을 이용한 발전장치”로 그 누구도 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특허청에서 발행하는 특허인증을 받은 것이다.     2만평 농사짓는 대농(大農), 봉사도 솔선수범      일반적으로 특허를 받기 위한 발전장치 하나에만 전념해도 어려운 일을 윤광영씨는 2천 평도 아닌, 2만 평의 농사를 짓는 대농(大農)으로서 농사 일을 해 가며 특허를 받았다는 것이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특허를 받은 윤광영씨는 나라와 이웃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전력생산을 위한 연구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틈틈이 연구를 하며 바쁜 시간을 쪼개어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2017년 말까지 5년 동안 새마을 지도자를 하며 이웃을 위해 봉사를 했다. 현재는 농촌지도사와 농협대의원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수해 주는 일에 여념이 없다.   특히 귀농 귀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농사 경험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농기계 고치는 방법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20년 동안 농사를 지었으니 경험과 노하우가 당연히 쌓여 있을 터.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기분이 아닐까?     자녀들에게 정직함을 강조하는 가장    윤광영씨는 딸만 넷인 딸부자 집의 가장이다. 요즘 시대에는 결혼을 해도 애를 많이 낳지 않는 상황에서 딸 넷을 낳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다.    그는 가정에서 항상 ‘정직’함을 강조한다. TV를 보면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자녀들에게는 항상 정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정직’이 가훈이 되어 온 가족이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윤광영씨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고, 그 조건으로 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돈은 많을 수 록 불행하다’고 일갈한다.   돈이 많으면 돈의 노예가 되어 인성을 흔들어 놓고, 능력과도 별개인 권력을 취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살면서 남에게 베풀 정도의 돈이 있으면 된다고 한다.   1년 농사가 끝나면 연수 1억 정도 벌지만 나가는 돈이 많다며 웃는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느낀다. 그의 마음속에는 벌써 행복의 씨앗이 자라고 있고 머지않아 행복의 열매를 거둘 것이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2만평의 대농으로서의 농사 일을 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를 하면서 “자동차를 이용한 발전장치”로 특허청의 특허를 받고 나라의 발전과 이웃의 발전을 위해 연구를 했다는 윤광영씨.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나간다면 반드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준 그의 다음 연구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꿈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의 DNA를 보며, 우리도 꿈을 향한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2019-10-22
  • 우직하고 성실한 울림이 있는 공무원
       김희경이 만난사람[10] -  가평군청 추운천 축산팀장     [김희경이 만난사람(10)=NGN뉴스] 대한민국은 지금 약 100만명의 공무원시대를 열었다. 나라의 공복(公僕)으로 영혼 없는 공무원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고, 소명의식을 갖고 자신의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책임감 있게 자신의 일을 솔선수범하는 공무원이 많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이다.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열병의 소용돌이를 한 몸으로 막고 있는 공무원이 있다. 25년 동안 올곧게 축산분야 한 우물을 판 가평군 축산팀의 추운천 팀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축산팀에서 첫 공무원 생활 시작하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한 그는 춘천으로 유학을 갔다. 전공도 강원대학교 축산과를 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가평군 축산팀에서 첫 공무원생활을 시작했다.   초년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모든 것이 어설펐다. 누구나 그렇듯이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현실에 접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상사였던 백병선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이 멘토 역할을 잘 해 주어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후 축산분야는 그의 독무대가 되었다. 동물을 좋아하고 전공도 축산과를 나왔으니 가축에 대한 기본 지식이 풍부했다. 더욱이 25년이란 긴 시간동안 축산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지식과 경험 그리고 노하우가 축적되어 가축분야의 절대 지존이 되었다.   가축분야에 대한 질문을 하면 그는 막힘이 없다. 오랜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책임감 있게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터득이 되었다.       구제역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싸우다   2010년 가평 인근의 연천과 포천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매몰 및 살처분 되었다. 축산 담당자로서는 일반적인 일이 아닌 심적인 충격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매몰이나 살처분 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다보니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겨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하면서 추 팀장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3명의 축산팀 인원으로 방대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예방작업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다행히 방역팀과 함께 거점소독이라든가 도로방역 등 총체적으로 공조를 하고 있다. 축산팀은 현재 축산환경과 축산정책을 이끌고 있다.   3명의 인원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및 소, 돼지, 닭 등 축산환경 문제를 다루는 것이 힘겨울 때가 많지만 1당 100의 정신으로 임하고 있다 . 아마도 몸이 10개는 있어야 될 것 같다.   현재 파주, 연천, 김포, 강화, 철원 등지에서 16건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판정을 받아 방역팀과 함께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추운천 팀장은 가평군민의 크고 작은 축산관련 민원에 항상 중심에 서서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해 문제를 해결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양측의 의견을 하나로 조율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   지난 달 우분으로 인한 악취와 관련한 민원에서도 액상미생물과 생균제 사용으로 악취를 없애는 대안을 제시해 축산업자들과 지역주민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적은 인원으로 가평군 수익의 50%를 올리다   적은 인원으로 광범위한 축산관련 일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현재 가평에서 사육되고 있는 한우는 10농가에서 13,900두가 사육되고 있다.   여기에 돼지와 닭을 포함하면 가평의 한 해 소득 1500억원의 약 50%를 축산분야에서 올리고 있다는 것에 큰 보람으로 느끼고 있다. 큰돈을 번다는 것은 그만큼 손도 많이 가고 신경도 많이 써야한다.   추 팀장은 축산관련 새로운 신사업이나 보조사업 등이 있으면 농장주들을 상대로 정기적인 교육도 병행한다. “이론과 실제”의 결과치를 기획하고 사전에 농장주들의 이익이 되도록 솔선수범하고 있다.   “군민의 생활양식이 다변화 되어 가면서 반려견과 관련한 세밀한 곳까지 손이 필요한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명의식을 갖고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2남 6녀의 7번 째 아들 어머니 20여년 모시다   추 팀장은 내성적이고 꼼꼼하며 성실한 타입이다. 군민의 이익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것도 모자라 장남을 대신해 20여년 넘게 어머니를 모셨다. 곁에서 불평없이 성심껏 함께 어머니를 모신 와이프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부모님 안 모시려고 가족 간 불협화음이 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차남으로 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는 것 하나만 봐도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착한 인성이 있으니 농장주들의 민원을 내일처럼 해결해 주고 발로 뛰며 필요한 교육도 해 주는 것이 아닌가?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도 많다고 하는데 이러한 모범적인 공무원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 팀장은 주말이면 고추, 열무, 상추 등 텃밭을 가꾼다. 채소를 수확해서 누나와 동생에게도 나누어 준다. 집안의 우애를 중요시하기에 자주 모여 친목을 도모한다.   또한 건강을 위해 조기 축구팀에서 체력을 다진다. 일에 만 파묻혀 살다보니 건강을 돌보지 못해 디스크로 꽤 고생을 하기도 했다.     초 고령화시대를 맞이해 상담사가 되고 싶어   추운천 팀장은 5년 후면 퇴직을 한다. 그때는 초 고령화시대에 접어들어 노인들이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상담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농업 정책과 행정을 안내를 대행해 주는 업무를 할 계획이다.   경험자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경험이 없는 노인들에게는 행정업무가 어렵게 다가오기에 그러한 점을 쉽게 해결해 주고 싶은 것이다.   추 팀장은 초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 농촌의 모습도 많이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식량에 대한 기준치를 가지고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소품종 대량생산’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도시로 이탈하는 속도가 빨라져 노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며 “영농대행단”이 탄생해 이들이 노인들과 계약을 해서 농사를 지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궂은 일 마다 않고 책임감 있게 군민의 이익을 위해 발 벗고 뛰는, 울림이 있는 공무원을 보며 멋진 농촌의 내일을 기약해 본다.  
    2019-10-14
  • “나만의 브랜드 만들어 스토리를 입히자”
       김희경이 만난사람[9] -  가평귀촌귀농학교 채성수 학교장      [김희경이 만난사람(10)=NGN뉴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갑자기 어린왕자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자신의 꿈을 찾아 가노라면 때론 미지의 세계와 조우할 때가 있다.     그래도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하다면 목표한 그 길을 달려가면 된다. 더욱이 인생 2막의 인생이라면 그 목표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최근 인생 후반 이모작을 성공적으로 펼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귀촌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인생 전반기를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불철주야 전투적으로 살아왔기에 성공적인 인생 이모작을 꿈꾼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5060 세대는 누구를 막론하고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치열했던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남은 인생을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귀촌귀농을 위해 많은 것을 공부했어도 현실과의 괴리가 심해 적지 않은 귀촌귀농인들이 꿈에 그리던 꿈을 포기하고 역귀농을 하고 있다.   이런 귀촌귀농의 실패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흑기사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가평귀농귀촌학교 채성수 학교장이다.     도시생활 접고 가평주민이 되다   채성수 학교장은 일반 귀촌귀농인 처럼 도시에서 정신없이 앞 만 보고 달려왔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에 대한 동경을 하게 되었다. 귀촌귀농을 할 곳을 물색하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가평에서 펜션을 하기로 하고 2007년 과감히 도시생활을 접고 가평주민이 되었다.   그러나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오다보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가평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가평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클린농업대학에 문을 두드렸다.   농촌관광과에 입학하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 했다. 외지에서 온 사람과 농사경험이 많은 현지주민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년간 공부하면서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가평에 정착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지인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안전하게 정착하는 방법 등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채성수 학교장은 당시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정부에서는 귀농을 우선시 하지만 귀농에 안전하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귀촌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5060 은퇴농 같은 경우에는 정확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농사를 망치게 되면 회복불능에 빠지기 때문에 귀촌이 먼저라고 말한다.   귀촌을 통해 지역적인 특색과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난 뒤 최종적으로 귀농을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귀촌귀농인들을 위해 체계적인 네트워킹을 마련하고, 뜻이 맞는 30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안전한 정착을 위한 ‘사랑방’을 만들어 더욱 심도 있는 교류를 해 나갔다.   교육의 성과물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더 많은 귀촌귀농인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전국에 있는 귀촌귀농학교의 교육시스템을 살펴보고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30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사랑방’을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귀촌귀농학교를 만들기 위해 1년 반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2017년 가평귀촌귀농학교를 설립하다   그는 2017년에 가평귀촌귀농학교를 설립했다. 그동안 많은 귀촌귀농인들이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곁에서 봐 왔기에 그들에게 안정적으로 정착을 돕기 위해 학교를 설립한 것이다.철저한 준비 없이 귀촌귀농을 해서 실패하면 자신의 전 재산을 잃는 것이기에 미연에 방지를 하기 위함이다.   “젊은 청년의 경우는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지만 5060의 은퇴농들은 한 번 넘어지면 재기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귀촌귀농학교를 설립한 채성수 학교장은 귀촌귀농인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전해 주었다. 성공사례를 통한 교육도 하지만 실패를 통한 교육도 중요하게 다룬다.   특히 경험 많은 주민강사들을 채용해 현장감 있는 교육을 한 이후부터 학생들이 몰입하여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이론으로만 그칠 수 있는 교육을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차별화 교육으로 바꾸었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할 경우에는 멘티와 멘토를 연결시켜 심화된 교육을 받게 한다.     농림수산식품의 일반공모와 특별공모에 연이어 선정되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17년 3월 농림수산식품 교육문화정보원의 일반공모에 선정된 데 이어 8월에도 특별공모 사업에 또다시 선정, 개교 첫 해에 전례없는 쾌거에 힘입어 전국적인 귀촌귀농학교의 모범사례로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농정원이 신설한 신(新) 중년대상 귀농귀촌교육 위탁교육기관으로 전국에서 4개 교육기관 중 한 곳으로 선정된 가평귀촌귀농학교는 전국 각지에서 선진 견학지 및 벤치마킹 예약전화가 빗발치는 등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냈다.   현재 가평귀촌귀농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610여명으로 각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에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귀촌귀농에 관심있는 사람들로부터 견학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강원도의 5개 마을 주민 40여명이 견학을 와 성공적인 인생이모작을 위한 방안에 대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론과 실제가 하나가 되는 차별화된 교육의 성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스토리를 입히자   “귀촌귀농을 해서 성공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중에 판로개척은 무엇보다도 중요해서 개인브랜드를 만들고 스토리를 입혀 유튜브나 SNS를 통한 적극적인 마케팅이 중요합니다.”   농촌에서는 농사를 지으며 실패하지 않으려면 1만여평의 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5060 은퇴농들은 소규모의 예산으로 귀촌귀농을 하기 때문에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그 브랜드에 스토리를 입혀 교육농장, 체험농장, 치유농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명 6차산업(1차 생산 + 2차 제조 + 3차 서비스, 판매)인 것이다. 채성수 학교장은 6차산업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한다. ‘잘하면 약이고 준비 없이 하면 독’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찾는 것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천천히 객관적인 눈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 보자.   예를 들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과 제일 잘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면 자신의 브랜드를 무엇으로 할 지 쉽게 떠오를 것이다. 그 뒤 브랜드에 스토리를 입혀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다.   분명히 5060 은퇴농들에게도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는 것처럼 성공의 기회가 있다. 인생 후반의 성공을 위해서 다시 한 번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잘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자. 일체화 된 나의 브랜드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는 시대이다.  
    2019-10-07
  • “나는야 최고로 빵 잘 굽는 남자”
      김희경이 만난사람[8] -  Moon & 6 Pence 고형재 대표        (화덕 빵을 통해 꿈을 이루고자 열정을 다하고 있는 고형재대표와 아내 최혜윤부대표)    [김희경이 만난사람(8)=NGN뉴스]  한 미국인이 가족과 함께 쇼핑을 하고 집으로 갈 때 시장바구니 위로 보이는 긴 식빵. 그 홍보물을 보고 왜 항상 식빵이 등장하는지 궁금했던 시절이 있다.    미국인들은 빵을 주식으로 하고 한국인은 밥을 주식으로 했지만 최근에는 한국인들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빵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문화의 충돌이기보다는 복합문화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식생활의 융복합과 퓨전요리가 보편화되는 시기에 우리 것을 지키고 새로운 퓨전요리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기로에 있다.    자칭, 타칭 가평에서 빵을 잘 굽는다는 베이커(Baker). 베레모에 코 수염을 기른 모습에서 장인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빵에 대한 역사를 달변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그의 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부친 간호를 위해 잘 나가던 사업 접고 귀향   달과 6펜스(Moon & 6Pence) 고형재 대표는 부친이 심장질환 수술을 앞두고 중대결정을 해야 했다. 부친이 심장수술 예약을 중단하고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을 때 고대표의 선택은 오직 하나, 부친을 간호하기 위해 사업을 접어야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했던가? 고대표는 부친을 간호하면서 자신도 뭔가에 집중할 것이 필요했다. 평소 빵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차에 인생 후반전의 화두는 ‘빵’으로 정하기로 했다.    고향에 내려온 고대표는 아내 최혜윤씨와 부친 병 간호를 하면서 오직 ‘빵’에 온 정열을 바쳤다. 부친 병 간호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은 빵에 대한 생각만 했다.     병 간호를 해 본 사람은 그 어려움을 알 것이다. 고대표는 묵묵히 부친의 병간호를 해 주고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일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런 아들과 며느리의 헌신적인 간호가 있어서인지 부친은 수술을 포기했음에도 오히려 24년을 건강하게 살다 84세에 작고했다.       꿈을 향한 열망, 6차 산업(1차 생산, 2차 제조, 3차 서비스)에서도 성공할 터    고대표는 당시 집을 개조해 ‘달과 6펜스’ 라는 카페를 만들어 음료와 커피를 판매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는 빵의 맛이 나오지 않았다. 고민을 하던 차, 직접 처음부터 빵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가평 농업기술센터의 클린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클린대학에 입학한 고대표는 빵을 통해 6차 산업을 실현시켜 보겠다는 의지에 불타 올랐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6차 산업을 적극 권장했고, 고대표의 제빵에 대한 열망이 있어 가평농산물 가공연구회에서 열심히 이론과 실습에 매진했다.    이때 이윤성 팀장을 만나 제대로 된 제빵 이론과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이어 장동규 소장의 후원으로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그들의 도움에 고마움을 느낀다.    고대표는 더욱 열심히 제빵 이론과 기술을 배웠다. 덕분에 지금은 귀농 귀촌을 원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빵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꿈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6차 산업의 기본을 채소류와 과일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빵도 충분히 6차 산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이 있다.     예를 들어 빵의 원료가 되는 잣, 콩, 마늘, 양파를 생산해서, 빵으로 가공해서, 체험학습 등으로 서비스를 하면 완벽한 6차 산업의 모델이 나오며 이는 곧 농가의 소득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고대표는 융복합교육농장 시범사업장을 열고 관내 초등생이나 귀농, 귀촌을 위한 예비농부를 대상으로 교육과 체험을 하고 있다.    고대표가 구워내는 화덕빵은 대한민국에서 하나 밖에 없다고 한다. 빵을 구워내는 화덕역시 고대표가 직접 설계해서 만들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전자공학도가 만든 화덕은 과학의 옷을 입었기에 기능면에서도 매우 훌륭하다.    (가평 잣을 이용해 만든 프랑스 빵인 '잣 깜빠뉴' 치즈가 녹아 내리는 빵에 잣의 향기가 은은히 배어있다)    “빵을 구우려면 열 종류인 복사열, 전도열, 직화열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열이 세면 빵이 타고, 열이 약하면 빵이 익다 말지요. 축열과 복사열로 만드는 빵이 제일 맛이 좋습니다. 또한 화덕 빵에 나무 향을 입히는 것이 가장 어려운 기술입니다.”    그동안 맛있는 화덕빵을 만들기 위해 2~3년 정성을 다했다. 실패를 통해 배운다고 태우기도 하고 덜 익히기도 하는 등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재료 또한 엄선해서 쓰고 있다. 유기농 밀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며, 제빵개량제 주석산 등 인체에 해로운 첨가물은 전혀 사용하지 않기에 빵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난다.   현재 제일 자신있는 빵은 프랑스 빵인 ‘잣 깜빠뉴’ 와 이태리 빵인 ‘차아바타’이다. 깜빠뉴는 가평 잣을 이용해 만들어서 빵에서 잣의 향기로운 향이 은은히 퍼진다.   그 밖의 빵들도 가평에서 나는 농산물을 이용해 천연발효액으로 만들었기에 맛과 건강에 자신 있다고 말한다.   천연발효액으로 만드는 빵은 18시간 정도 깊게 숙성시킨다.   미생물이 빵을 완전 발효시켜 주기 때문에 빵이 부드럽고 또한 건강식이라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한 번 화덕 빵을 먹어 본 사람은 멀리서도 찾아 와 단골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단골손님이 늘어난다는 것은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더욱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이다.      마을기업 만들어 ‘화덕 빵’으로 가평의 명소 만들 터     고대표는 최근 원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 그동안 준비해 왔던 로드맵을 펼쳐 보였다. 마을기업을 만들어 가평의 명소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역 이장과 협의를 하며 실전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고대표가 설계해서 만든 화덕으로 참나무로 열을 올리고 향을 빵에 입힌다)    “가평하면 잣으로 유명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해서 가평하면 화덕 빵으로 유명해지는 그날을 꿈꾸고 있어요. 빵이 다 똑같은 빵이 아니라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세상에서 하나 뿐인 빵을 만들고 싶어서 이장님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하고 있어요.”    머지않아 가평 잣에 이어 가평 ‘화덕 빵’ 을 선 보일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천연 발표액으로 만들었고 참나무로 향을 입혀 만든 건강한 화덕 빵이기에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다.     웰빙시대이기에 맛은 기본이고 건강에도 좋은 빵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기존의 화학적으로 만든 빵과 천연발효액으로 만든 빵의 차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가평을 대표하는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화덕 빵이 비상할 날을 예고하고 있다. 그 날이 오면 마을기업과 지역경제의 활성화 그리고 오로지 한 우물을 판 고대표의 공유경제가 빛을 발하리라.   
    2019-09-19
  • ‘통학소주’ 마침내 애국자 되다
         김희경이 만난사람[7] - 박문욱 시계박물관 관장          [김희경이 만난사람(7)=NGN뉴스]  우리인간은 행복해 지기 위해 산다고 한다. 열심히 일 하는 것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행복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의 가치는 무게와 가격의 환산이 가능할까? 행복의 가치는 자신의 주관에서 나오는 내면적인 문제이기에 일반적으로 환산이 어렵다.    오늘 대학시절 부산에서 유명했던 “문제학생”이었던 박문욱 시계박물관 관장을 만났다.   절대행복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간파하며 사회가 만들어준 형식적인 행복의 프레임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자신만의 행복의 조건을 하나 하나 채워나가고 있다.    지금은 가평군 수리재에 자신만의 멋들어진 유토피아를 만들고 있다.   그러면 부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문제학생’이었던 그가 어떻게 자신의 자전적인 생생한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일까?    그는 동아대학교 건축과와 ROTC(대학에서 2년간 군사교육을 받으면 장교로 임용 됨)를 나왔다. 당시 동아대학 학생들은 물론 부산시민들도 거의 모두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그는 사회가 설계해 놓은 프레임에 염증을 느껴 학교 통학할 때와 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항상 소주 4병을 마셨다고 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말술이어서 그런지 저 역시 자연적으로 말술이 되었어요. 등교 전에 쐬주 2병을 까고 학교에 가면 ROTC 선배들한테 엄청 많이 맞았어요. 그래도 그 술 버릇을 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문제아 대학생이었던 박문욱 관장은 공병장교로 입대하면서 자신의 정상적이지 않은 생활을 180도 바꾸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장병들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절대 용서 할 수 없다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내 병사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의 문제아 적인 행동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절제를 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해 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 욕망을 억제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떠 오르는군요,”   '문제아 학생' 공병장교로 군에 입대해 살을 깍는 살신성인으로 새롭게 태어나   공병장교를 하면서 건설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건설업무를 하다보니 용접은 기본으로 다 익혔다. 철을 때우는 일반 용접과 알루미늄을 때우는 아르곤 용접도 벌써부터 배웠다.     남들은 요즘도 군대 안 가려고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있지만, 절대긍정의 마음만 있다면 군대에서의 경험은 실제적으로 사회에 나와서 무척 많은 도움을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군대생활을 통해 확 달라진 아들 모습을 본 부모님도 너무 기뻐 눈시울을 적실 정도였다.   ‘개과천선’이란 이런 경우를 말하지 않을까? 당시 부산에서는 박관장이 앞으로 제대로 잘 될 것이라고 예견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단언한다.       드디어 '문제학생' 포스코 임원으로 영전(?)    그러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난 박관장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제대하기 전에 취업을 위한 실전경험을 모두 마스트하고 제대를 해서 어렵지 않게 삼환기업에 입사했다.     삼환기업에서 심도있는 경험을 쌓은 뒤 곧바로 대기업인 포스코에 입사했다. 이때부터 박관장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사회에 나오기 전에 군에서 모든 실무와 정신적인 무장을 확실히 했기에 포스코에서도 잘 나갔다.    당당하게 포스코에 입사한 뒤 유럽과 중동 그리고 예멘 등 전 세계를 누비며 특유의 마도로스 기질로 열심히 일했다. 당연히 능력을 인정받아 포스코 임원이 되었다.      “문제학생”이 포스코 임원으로 영전(?)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통학소주”의 문제학생이었지만 그 시절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만의 강한 의지가 묻어났다.    그는 중학교 때 대한민국은 진공관 박물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해외에 파견나가 있을 때 진공관이 들어있는 시계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족의 도움도 무척 힘이 되었다. 아들은 말을 수집했고 딸은 램프 그리고 와이프는 유제품과 목기류 박관장은 시계를 수집하는 환상적인 콜라보를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수집한 전 세계의 시계 중에는 남북전쟁 때의 시계도 있다. 희소성의 가치로 보면 금전적인 가치가 있을 법 한데 돈 문제는 얘기 하지 않는다.    돈 문제로 들어가면 자신이 꿈을 향한 목표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에둘러 프로 소장가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은퇴를 하고 수리재로 귀촌해 정크아트(산업폐기물을 이용한 예술) 에 몰입   박관장은 은퇴를 하면 시골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열망으로 포스코에 근무하면서 현재의 수리재에 2600평의 땅을 사 놓고 자리를 잡았다.    집 뒤에는 산이 있고 집 앞에는 물이 흐르고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이었다. 처음에는 마을 텃세가 심했다. 남들은 일하고 있는데 외지에서 사람이 들어와 시끄럽게 할 것 같은 생각에서 그랬을 것 같다고 박관장은 말한다.   그렇게 몇 년을 꾸준히 아침 일찍 일어나 음악을 틀어놓고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수집품들은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30년동안 해 온 정크아트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박관장의 정크아트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에서 한두 명씩 찾아와 정크아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마을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집안에 당구대, 노래방 시설을 설치해 마을사람들에게 언제나 오픈되어 있다.    최근 박관장은 마을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도로를 따라 세워 놓으면 마을의 이미지가 높아질 것이며 외지에서도 관광객이 놀러와 마을 경제도 살아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관장은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마을사람들은 먹을거리를 제공하면 지역특산품 판매로 이어져 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관장은 그 계획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10여개의 고물상을 찾아 작품에 쓸 재료를 찾는다. 이제는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남들은 산업쓰레기라고 돈을 주며 버리는 데 자신은 그것을 모아 정크아트 작품으로 승화시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으니 저는 ‘애국자’ 아닌가요? 하하하”    호탕하게 애국자임을 강조한 그는 산업화가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기계화의 힘을 빌리는데 정크아트는 오롯이 손으로만 만들어 가기에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그의 정원에는 지금까지 만들어온 수많은 정크아트 작품들이 있다. 또한 정크아트 공방에는 생활전반에서 나오는 수많은 산업쓰레기가 새 생명을 부여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그들이 박관장의 정크아트 기술을 통해 새 생명을 부여 받을 때 태산이 진동할 듯한 깊은 감동이 있으리라.   박관장은 이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앞으로 생을 마감하는 날 까지 정크아트의 작품을 만들어 눈길 하나 받지 못하던 천덕꾸러기 산업폐기물이 최고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순간의 환희를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 때 좌절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좌절을 어떻게 이겨내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박관장, ‘문제학생’이라는 불명예를 당당하게 극복하고 앞으로 지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파라다이스를 만들어 가고 있는 그의 인생 2막이 기대된다.  
    2019-09-10
  • 소신과 현실에서 올곧음을 찾은 30년 맛집 장인
     김희경이 만난사람[6] - 권민정 장마당 순대국 사장            (권민정 사장의 남편 안경훈씨)   예나 지금이나 가릴 것 없이 집안을 일으킬 때는 항상 집안의 태양인 엄마의 존재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속담에도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흥한다” 는 말로 엄마의 자리가 그 어느 것 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13살 나이, 수줍음을 타기 시작했을 무렵 엄마가 식당 일 하는 것이 안쓰러워 자발적으로 엄마 일을 도와주던 셋째 딸.    당시 엄마는 생활력이 강한 여장부로 식당을 이끌어 갔을 뿐만 아니라 집안 역시 억척엄마로 자식 7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길러냈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이라고 했나? 셋째 딸 역시 엄마를 닮아 생활력이 강한 전사로 거듭나 요리실력을 연마해 드디어 엄마의 식당을 이어받았다.     식당을 이어받기 10여년 전부터 평소 엄마의 용돈은 물론 엄마가 수술 받을 때 역시 아침 저녁으로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엄마는 셋째 딸을 불러놓고 10여년 동안 한결같이 엄마를 위해 보살펴 줘서 고맙다며 가게를 셋째 딸에게 물려주었다.   식당을 이어받은 셋째 딸 권민정 사장은 엄마의 장점에 자신의 장점을 더해 내 몸 돌보지 않고 정성을 쏟아 최고의 식당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순대국 식당을 운영했다.     평상시 엄마에게 “진실되게 음식을 만들라” 고 배운 권사장은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 요리를 했다.     당연히 좋은 재료를 쓰다보니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지출되었다. 그러나 30년 요리 장인의 소신을 저 버릴 수 없어 지금까지 철칙을 고수하고 있다.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껏 손질한 신선한 고기를 쓰니 맛이 좋을 밖에 없었다. 기름기가 없어 맛도 담백한데다 양도 많아 한 번 찾은 손님은 계속 찾는다.    최근에는 가까운 곳은 물론 멀리 타 지방에서도 순대국을 먹으러 올 정도이다. 그야말로 전국구 순대국 식당이 된 것이다.   몰려드는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권사장은 그날 받은 고기만 소비하고 고기가 동나면 그날은 문을 닫는다.     먼 길을 달려와 허탕치고 돌아가는 손님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손님들에게 신선한 고기를 깨끗하게 손질해 맛있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권사장.     인터뷰하는 날도 권사장과 남편은 곱창의 기름을 깨끗이 제거하고 있었다. 다른 가게는 기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곳도 있지만 권사장은 기름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맛깔나게 순대국을 끓인다.    “저는 정성들여 고기를 손질해서 요리를 하기에 그날 준비한 요리는 거의 다 나가는데 만약 남는 고기가 있으면 모두 버립니다. 그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깨끗이 손질한 맛있는 고기를 버리는 것을 본 직원이 ‘아직 신선한 것을 왜 버리냐’ 고 해도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 원칙이 있었기에 가평의 맛집 청평장마당 순대국 식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소문이 나서 손님은 줄을 섰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언제부터인가 관절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 관절이 오더니 어깨와 목까지 관절이 와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하소연 한다. 더욱이 최근에는 고혈압까지 와서 일을 그만두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권사장.     그나마 남편과 아들이 도와줘서 버틴다고 한다. 맛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권사장. 새벽 3시에 일어나 일할 준비를 해야 하는 강행군을 보면 결코 쉽지 않은 고행의 길임을 직감할 수 있다.     남편 역시 하루 7시간 정도 쪼그리고 앉아서 꼼꼼하게 고기를 손질을 하다 보니 무릎 관절이 왔단다.  남들은 맛집으로 손님이 줄을 서는 것을 보고 빌딩을 샀네, 집을 샀네 하지만 정작 아직도 지불해야 하는 돈이 있단다.  손님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재료비가 85% 정도 되다 보니 돈을 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벌려고 했으면 벌써 벌었다고 했다. 가격이 싼 고기를 사서 양을 남들처럼 적게 하면 돈은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30년동안 지켜온 철칙을 바꿀 수가 없다고 한다. 소신과 현실사이의 괴리감이 존재함에도 올곧은 자신의 소신을 지킨 것이다.    “그나마 다른 가게는 손님이 없어서 걱정인데 저희 식당에는 손님이 줄을 서고 있으니 행복한 것이죠.”  아들에게 절대로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더욱 분발하겠다고 말하는 권사장의 얼굴에 희망의 미소가 흘렀다.  
    2019-09-03
  • 시대에 앞선 창의력으로 꿈을 꾸는 전위예술가
          김희경이 만난사람[5] - 손일광 노랑다리 미술관 관장    [김희경이 만난사람(5)=NGN뉴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꿈을 꾸며 자랐다. 대통령에서부터 과학자 의사 교수 등 수많은 꿈이 생겨나고 지워지곤 했다. 올곧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감이 된다.     가평군에 위치한 노랑다리 미술관의 손일광 관장은 꿈을 이루기 위해 13년동안 묵묵히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전위예술 그룹 ‘제4집단’ (The Fourth Group)을 이끌어 온 설치 미술의 대가이다.    소문대로 미술관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예사롭지 않은 작품들로 가득했다. 무한한 상상력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을 보니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를 보는 듯 했다.    손관장은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화두로 삼아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잠을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메모를 하고 다음 날 그것을 작품으로 연결시킨다.     그의 상상력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미술관 건물도 설치미술로 지었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전봇대에 작품을 입히고 그것을 세워 미술관을 지었다. 어떻게 전봇대를 엇비슷하게 세워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2층 건물을 만들려는 생각을 했을까?    손관장은 틀에 박힌 정형화된 것을 거부한다. 작품들 속에도 충분히 그의 생각이 나타나 있다. 그렇다고 추상적이지도 않다. 오래된 핸드폰과 타자기 등 우리의 생활상에서 볼 수 있는 소재로 만들었기에 정감이 간다.    특이한 것은 관람객들에게 왜(Why) 라는 화두를 던진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왜 그러지?” 하는 호기심이 저절로 생긴다. 대학에서 배웠을 법한 전문용어도 쉽게 설명을 해 준다.     그 예가 피타고라스의 정의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과학과 수학을 재해석해 예술작품으로 표현한 그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글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작품을 통해 설명을 들으니 쉽게 이해가 된다.    “저의 작품은 동서남북에 있으며 땅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습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발 밑에도 있고, 계단에도 있고 시선이 머무는 모든 곳에 있다. 그의 애정어린 작품들을 보면 뜨거운 집념을 느끼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모든 물건이 작품의 소재라고 말하는 그는 박물관(Museum) 과 미술관(Gallery) 의 합성어인 "Mullery" 를 탄생시켜 특허상표등록을 완료했다. 까치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 의미를 확대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미술관을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예술의 혼을 불살라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을 선 보여 정부와 미술계에서 수여하는 큰 상도 6차례 받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이다.    3000여 평에 펼쳐진 그의 무릉도원, 앞으로 7년을 더 땀 흘려 20년 프로젝트를 완성해 후대에 물려주고 싶다는 그의 꿈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전위예술, 행위예술 그리고 설치예술로 장르를 옮기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손일광 관장. 20년 프로젝트 후반부에는 우주의 비밀을 작품으로 표현해 과학문명의 발전과 이해를 돕는데 일조를 하고 싶다고 한다.     인류학자들이 말한 대로 물질이 삶의 질을 결정하던 시대는 가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삶의 가치를 높이는 시대에, 손관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집념은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시금석이 될 것이다.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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